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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Oct 30. 2023

서로에게 비상구가 되어줄 때

100일의 글쓰기 - 54번째

조정석, 임윤아 주연의 2019년 영화 ‘엑시트’는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다. 잔망스럽고 코믹한 둘의 연기에 러닝타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좋았다. 재난에 내몰린 두 청춘이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구를 찾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너무도 잘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유독가스는 바람을 타고 아래에서부터 점점 위로 올라가는 특성을 지닌다. 구조될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높은 곳으로 피해야만 했다. 때문에 주인공들은 가스를 피해 건물 옥상으로 그리고 또 다른 더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계속 도망치게 된다. 영화의 내용과 카메라 앵글은 계속 수직으로 상승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일 년 전 오늘,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바로 이 영화가 떠올랐다. 좁은 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대규모 압사.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아래 깔린 사람들이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위쪽에 있었던 사람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태원에서의 안타까운 참사도 더 높은 곳에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희생자가 젊은 청년들이었다는 것도 참담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하필 압사였다는 점이다.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쉬지 못해 죽게 되는 것. 가뜩이나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느라 숨 한번 제대로 내쉬지 못했던 청춘들에게 이보다 더 잔인한 형태의 죽음이 있을까. 


  그럼에도 이 사고에 대해서 모두가 슬퍼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너무 충격이었다. 심지어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철없는 젊은이들이 서양 귀신 축제에 홀려서 놀다가 죽은 것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애도는 못할망정 수많은 청년들의 희생을 그럴만한 죽음으로 매도해 버리는 모습은 현재의 우리가 얼마나 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날이 서있고 눈이 멀어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피해자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그런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더 깊은 트라우마에 빠졌을 것이다. 


  사실상, 피해의 규모가 커진 이유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에도 있었다. 정상적인 행정 시스템만 작동했더라면 그렇게나 많은 희생자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고였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는 있지만 차가운 시선이 아닌,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주는 것이 맞다.


  영화 ‘엑시트’ 속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고군분투 끝에 재난으로부터 탈출한다. 그들이 발휘한 기지와 노력이 가장 유효하기는 했지만, 오로지 스스로의 힘만으로 목숨을 건진 것은 아니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많은 수의 드론이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구조되기를 응원했고, 끝내 소방헬기가 와서 건져내기에 이른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아픔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더 먼저다.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혼자 사는 것 같지만, 돕는 손길과 격려의 목소리가 없다면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도, 살아남게 하는 것도 결국 공동체의 온기이다. 그 따스함이 우리 모두를 재난과 위기로부터 건져내어 줄 것이다. 






*사진출처: Photo by Braden Hopkins on Unsplash, CJ C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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