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세곡 Nov 23. 2023

내 멋대로 해라

100일의 글쓰기 - 78번째

“그래서 관두면 뭐 할 건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하루에 족히 서너 번씩은 들려오는 말.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다.



  회사 건물 안팎을 오가다 마주치는 사람들, 주로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나를 발견하면 토끼 눈을 하고는 달려와서 묻는다. 내가 관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나의 퇴사는 이미 한물 간 소식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퇴사날짜가 거의 임박하기도 했고,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기에. 더 이상 놀랄 만한 뉴스도 아닐 텐데 막상 당사자인 나를 마주치면 새삼 궁금해지는 모양이다.


  걱정 반, 궁금증 반으로 묻는 것 같기는 하다. 뉴스나 유튜브를 보면 단골로 등장하는 자극적인 문구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그런 말들. 나를 향한 그들의 염려가 오지랖만은 아님을 나도 안다.


  “아직 별 계획은 없고, 그냥 쉬려고요.” 누가 묻든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마지막에 멋쩍게 웃는 어색한 미소까지도. 나는 앵무새처럼 늘 같은 대답만 해왔다.


  정말로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굳이 덧붙이자면, 당분간은 되는 대로 살 예정이다. 대책 없는 것을 넘어 철딱서니까지 없어 보인다. 내가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나의 모습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낯설고 의외의 면모다. 나는 이른바 파워 J형으로 계획에 살고 계획에 죽는다. 절대로 계획 없이 움직이는 법이 없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계획 없이 관두게 된 것인가? 사실은 나도 나름의 계획이 있다. 다만, 최소화했을 뿐이다. 한 템포 쉬면서 내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힘든 점 중 하나는 자아의 상실이었다. 한 때는 제법 멋진 인생을 살아보겠노라고 의욕에 불타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치 거대한 기계 속에 끼워진 작은 나사못이라도 된 것처럼 무기력함에 빠졌다.


  회사라는 거대한 우주를 아무리 헤집고 다녀 봐도 나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타인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내가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몸만 사무실에 있었을 뿐, 이미 오래전에 영혼은 퇴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마음이 가는 대로 한번 살아보려 한다. 이것만이 유일한 나의 계획이다. 이 선택의 끝이 내가 꿈꾸는 진정한 해방일지, 더 비참한 구속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바라기는 내 몸이 있는 그곳에 내 마음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당분간 나의 모토는 “내 멋대로 해라”이다.





*사진출처: Photo by Persnickety Prints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단골 추가 완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