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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Dec 06. 2023

나의 이름은

100일의 글쓰기 - 91번째

나의 이름은 두 개다. 성이 ‘두’, 이름이 ‘개’라는 말이 아니라 성과 이름이 두 개의 버전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도 매우 공식적으로.


  우리 세대만 해도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호적에 오른 이름과 어릴 적부터 가족들에게 불리던 이름이 다른 경우. 예를 들어 호적의 이름은 ‘우식’인데 집에서는 ‘우성’이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집안에서 부르는 비공식적인 그런 거 말고, 나름 국가에서 인정하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는다면, 바로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신분증에 새겨진 나의 이름은 ‘세곡’. 그런데 호적에는 ‘새곡’으로 되어 있다. 학생일 때는 관련된 서류를 뗄 일이 없으니 전혀 몰랐다.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관공서에 정식으로 등록된 나의 이름이 두 개인 것을.


  왜 다른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태어나고 호적에 올릴 때 누군가의 착오로 벌어진 일일 것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전산화도 안 되어 있던 시대인 데다가 본인 인증 같은 것도 없었을 테니 그럴만하다.


  사실 평상시에는 지장이 전혀 없다. 고작 낱글자 하나 다를 뿐이고, 나는 그냥 일관되게 ‘세곡’으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이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 때가 대부분이다. 다만, 아주 가끔 불편함을 초래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퇴사를 했으니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을 하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발급을 시도하는데 분명히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올바르게 넣었음에도 자꾸 ‘그런 사람 없습니다.‘를 시전 했다.


  주민번호는 같지만 등본에는 ‘세곡’, 가족관계증명에는 ‘새곡’이라고 되어 있는 관계로 전산시스템이 나를 찾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세곡’이나 ‘새곡’이나 그놈이 그놈이고, 바로 그놈이 나라고 직접 가서 증명해주어야만 한다.


  오랜만에 간 주민센터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었다. 얼핏 봐도 방문자 중에서 내가 제일 어려 보였다.


  간단한 일로 괜히 창구 담당 직원을 번거롭게 하는 거 같아 괜히 눈치가 보인다. 다행히 나를 맞아준 공무원은 상당히 친절했다. 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왜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왔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해 본다.


  안 그래도 내가 내민 신분증에 적힌 걸로는 검색이 안 되었단다. 그제야 직원은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 이름을 바꿀 수 있냐 물었더니 본적 즉, 등록기준지에 문의하면 알려줄 거라고 했다.


  지명을 언급하며 이쪽으로 가보라는데 생각만 해도 귀찮아진다. 앞으로 가족증명서 뗄 일이 몇 번이나 더 있을까? 그때마다 주민센터 오는 게 더 귀찮은지, 마음먹고 먼 지역으로 원정 가서 내 이름 고쳐다오 하는 게 더 귀찮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어쨌든 당분간은 계속 두 이름의 사나이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새곡’이 모야? 기왕 잘못 쓸 거면, 차라리 ‘재곡’이라고 해주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아? 천재곡!




*사진출처: 구글검색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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