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도전하는 삶
겁이 많다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말도 된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겁이 많았다. 또래 아이들이 해봤을 법한 도전들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 있는 철봉에 매달리는 것이라든지, 정글짐 맨 꼭대기 위에 올라가 보는 것이 그렇다. 보통의 남자아이들이 어지간하면 해내던 것들을 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놀이에 불과한 아주 쉬운 도전도 겁이 많아서 시도하지 못했던 것이다.
도전을 못하니 성취감이나 성공의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 길도 없었다. 그냥 학교만 왔다 갔다 했고 늘 자신감이 없었다.
꽤 흔했던 태권도, 피아노, 미술 학원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딱히 새로운 것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아이들을 학원에 너무 보내서 문제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안 해봐서 문제였다.
어렸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학교 공부조차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다른 뭐라도 해봤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랬다면 소질에 맞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왜 이렇게 도전하지 못하고 주저하며 살았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나마 분명한 것은 무언가에 묶여 버리기라도 한 듯 스스로를 '제한'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 새로운 관계, 새로운 곳보다는 늘 지금 있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편했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주하는 삶을 살아오다 보니 남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낮은 기대뿐이었다. 기대치가 낮아질수록 삶에 대한 의욕도 한없이 추락했다. 그럴수록 스스로를 더 제한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도전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제한된 인생을 살아왔던 나에게 변화는 꼭 필요해 보인다.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야 미래의 내가 조금은 덜 후회할 것 같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겁이 많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면 어릴 때보다 더 많은 '제약'이 따르겠지만, 더 이상 스스로를 '제한'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크고 대단한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작고 사소한 것부터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늘 마음만 먹었던 운동을 시작한다든지, 악기를 배우기 위해 학원 문을 두드린다든지, 아니면 매일 만나고 있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 동료에게 먼저 다가간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일상의 작은 도전들이 차곡차곡 쌓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조금씩 나아가면서 나의 삶이 더 나아지고 있음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느리게 도전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