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보내며
어렸을 때부터 차례 지내는 것은 조상님에 대한 예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당시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셨던 큰아버지께서는 일일이 상차림을 다 챙기실 정도로 무척이나 정성을 다하셨다. 마치 정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오셔서 드시는 밥상을 차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를 먹게 되자 차례는 전통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차례상에만 머물러 있었던 나의 시선이 차례상 너머의 한 사람을 향하게 되었다. 바로, 사촌 형의 아내인 형수님이었다.
큰 아버지의 맏며느리이기도 한 형수님은 명절에는 그 누구보다 바빴다. 손님 챙기랴 음식 챙기랴 자리에 앉는 법이 없었다. 딱 봐도 제일 고생하는데 정작 큰아버지는 형수님에게 너무나도 차가웠다.
고생했다는 말은커녕, 상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기 일쑤였다. 이미 돌아가신 조상에 대해서는 그렇게 예의 있으신 분이 정작 살아있는 며느리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시지 않으셨다. 그 때문이었는지 형수님의 안색은 늘 어두웠다.
형수님은 명절 내내 일만 하셨다. 돌아가신 분들 상을 물리면 곧바로 산 사람들 상을 차려냈다. 식사가 끝나면 이번엔 술상과 다과상을 차리셨다. 그리고 한바탕 설거지를 하고 나서야 한 숨 돌리나 싶으면 벌써 다음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를 비롯해 그나마 집안의 젊은 남자들이 좀 도우려고 하면 여지없이 큰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큰집에 친척들이 다 모이면 스무 명도 훨씬 넘었다. 형수님은 그 많은 식솔들의 식사 준비를 거의 다 혼자 해내고 있었다. 평소 직장도 다니고 있었던 형수님에게 명절은 '연휴'가 아니라 '연중무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둘째 사촌 형이 결혼을 하고 나서야 형수님에게는 손 아래 동서가 생겼고 혼자 하던 일을 겨우 둘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차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게다가 차례 준비는 왜 여자들만 하는 것인가? 제일 고생하는 형수님에게 큰아버지는 왜 저렇게 차갑기만 한 것일까?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전통이 꼭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명절만큼은 부정적 영향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우리 큰집만 보아도 돌아가신 조상 챙긴다는 이유로 정작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는 저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더구나 차례를 지낼 때 성차별은 너무나 심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명절은 남아있겠지만 차례는 서서히 소멸되어 갈 것이다. 대부분의 다음 세대들은 차례를 지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앞선 세대들은 요즘 세대들이 전통을 무시하고 예의가 없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은 엄연히 기성세대의 잘못이라 할 수 있다.
명절의 참 의미를 상실한 채, 그저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가 해왔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만 했던 그들과 우리의 잘못인 것이다. 조상님께 드릴 차례상에만 몰두하느라 상 너머에 있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는 것을 너무 소홀히 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절도 중요하지만,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더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의식을 지켜는 데에만 급급해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차례에 대해 사형을 언도해도 그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의식'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식 있게 사는 것'이다. 해왔던 것이라고 해서 비판 없이 계속 이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 전통이라고 무조건 지킬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은 남기되 차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은 버려야 한다. 명절마다 우리는 너무 예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