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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

by 천세곡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그냥 좀 잊고 사는 날이 많다는 정도가 아니다. 휴대폰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사는 수준에 가깝다 할 수 있다.


확인하는 이유도 뭔가 찜찜할 때다. 이번 주에 약속이나 일정이 있었던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한 번씩 들 때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곤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큰 실수는 하지 않았다.


딱히 기억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관심의 문제인 듯하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큰 상관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밥때가 되면 적당히 챙겨 먹고 기분 따라 그날그날 즉흥적으로 하루를 보낸다.


일을 하지 않아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으니 시간도 내게서 좀 멀리 떨어져 저 혼자 흘러가는 느낌이다. 그냥 놔두면 어떻게 하려나 두고 보니 내 눈치 하나 보지 않고 점점 더 빨리 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하루가 참 빠르다. 뭐 별거한 것도 없이 참 빨리도 간다. 백수가 더 바쁘다고 하는 우스갯소리는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만일 나와 만나고 싶다면 함께 세밀하게 일정을 조율해야 할지 모른다. 괜한 비싼 척이 아니니 오해 마시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잠시 착각하고 있을 뿐, 시간을 초월해서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하루를 마무리 짓는 어두운 밤이 다가오면 허무함과 두려움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너무 빨리 지나간 오늘의 끝에서 하루를 돌아보면 후회가 9할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다가올 시간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이하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서 내일의 나는, 나의 하루는 좀 더 괜찮은 시간 속에 머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오늘’ 만이 계속 반복될 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내일은 다음날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 맞이한 것은 내일이 아닌 깊은 밤 또다시 내일을 그리고 있는 오늘의 나였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일은 없다.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내일은 늘 오늘의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내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 가지만, 어쩌면 내일은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 대신 오늘이 있다. 오늘이라는 찬란한 시간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들은 어쩔 수 없고, 내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 오늘에 집중해야 한다.


날짜도 요일도 모르면 좀 어떤가? 오늘 하루의 시간 속에서 살아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바로 오늘이다. 그걸로 된 거지.




*사진출처: Image by Дарья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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