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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이 약이 되기를

by 천세곡

회사를 관두고 가장 열심히 몰두한 일은 심리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원래는 병원에서 약처방 받으며 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좀 길게 나눠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듣던 원장님은 더 깊은 상담의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같은 층에 심리상담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몇 분의 상담사분들이 근무하고 있었고 필요한 경우 병원과 연계하여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처음에는 상담 권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솔직히 거절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나는 의학적인 도움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원장 선생님과 이렇게 진료보며 몇마디 직접 이야기하는 게 더 낫지 싶었다.


거기다 2년 가까운 시간을 모 대학의 심리상담센터에서 온라인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심리 상담은 그때의 경험으로 받을만큼 받은게 아닌가? 종결의 시점도 당시 상담 선생님과 나름 신중하게 상의하고 합의하에 결정을 한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안되서 이렇게 우울과 불안 증세가 재발했으니 딱히 거절할 명분이 내게 없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심해져서 액체 종류를 잘 삼키지 못하는 신체화 증상까지 나타났으니 나는 할말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물을 마시는 일이 내게는 가장 큰 공포였다.


물론, 원장님은 부드럽게 권유할 뿐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딱히 장삿속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연계해 주는 상담을 받는 것과 따로 다른 상담센터에서 받는 것의 차이가 있느냐고 여쭤보았다. 원장님은 다른 곳에서 받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고 했다. 다만 여기서 받으면 자신과 상담사가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는 장점은 있단다.


솔직한 내 마음을 말했다. 이미 과거에 나름 오랜 시간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 또 받아야 하는지, 사실은 그렇게 내키지는 않는다고. 원장 선생님은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고 나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살아온 삶의 10분의 1 정도는 받아야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낼 수 있다고 덧붙이셨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40대인 내가 전에 받았던 상담의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던 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경험상 나는 또 내 어린시절의 이야기부터 꺼낼 것 같기는 하다. 기억 저편 어딘가에 있는 무의식 속 어린 나와의 만남. 내면을 들여다 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큰것도 사실이다.


기왕 받기로 한 상담 마음을 더 깊이 돌보기로 결심했다. 약물 치료와 상담을 받고 있는 지금이 앞으로의 삶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상담하는 시간들이 쌓여가는 만큼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순간들이 오기를.


훗날 오늘을 회상하며 나에게 정말 좋은 약이 되어 준 그런 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Image by Jo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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