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0일에 회사를 관뒀다. 다니는 동안 이사를 세 번 했고, 휴대전화도 세 번 바꿨다. 거의 10년 가까이 일했던 회사. 30대의 대부분을 그곳에 바쳤다.
퇴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다. 코로나가 막 창궐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때다. 회사는 발 빠르게 인원 감축 수순을 밟았다.
사원급 위주로 인원을 줄이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의사결정권이 있는 관리자들은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의아했다. 임원급이 단 한 명도 줄지 않는다는 게.
꼭 이 방법밖에 없는지 묻고 따질 여유조차 주질 않았다. 부서별로 줄여야 할 인원이 정해지는 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총 아홉 명의 사원이 일하던 우리 사무실에서도 두 자리를 빼야 했다.
한 명은 권고사직, 다른 한 명은 타 부서로 이동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었지만,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들이 마치 나를 대신해 떠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 대신 죽어줘야 하는 데스게임. 우리는 현실판 오징어게임의 참가자와 다를 바 없었다. 생각보다 팬데믹은 오래 지속됐다. 추가적인 인원 감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더 큰 문제는 업무량이었다. 일손은 줄었는데 일은 그대로였다. 관둔 인원의 업무는 사라지지 않고, 쪼개져 고스란히 남은 자들에게 던져졌다. 살려줬으니 더 일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관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아남았지만 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업무 시간에는 예민했고, 휴일에는 무기력했다. 만 3년을 꼬박 매일 밤 퇴사 문제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점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늘어갔다.
터질 듯 말 듯 간신히 참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중, 어느 날. 물이 삼켜지지 않았다.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했으나 1년이 넘어가도록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빨대로조차 물을 삼키기 어려웠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으나 원인을 알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우울증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권하셨다. 난생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게 되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은 코로나보다 더 지독한 감기에 걸려 있었던 거다. 그날부로 나는 3년간 고민해 왔던 퇴사에 관해 결심을 굳혔다.
바로 다음 날, 부서 관리자에게 퇴사의 뜻을 전했다. 인수인계는 차질 없이 준비할 테니, 할 수 있는 한 후임자를 최대한 빨리 뽑아달라고 말했다. 그렇게나 오래 고민했는데, 막상 뱉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관두고 싶었다.
그해 11월 30일, 그날이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동료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텅 빈 내 자리를 뒤로한 채 사무실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홀가분했다.
남들보다 비교적 빠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스물셋에 첫 취업을 했고, 그때부터 거의 쉬지 않고 꼬박 20년을 일해 왔다. 20대 후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일하면서 했으니, 말 그대로 오래 쉰 적이 없다.
퇴사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외쳤다. 1년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쉬겠노라고. 아내도 내 상태를 알았기에 걱정 말고 몸을 챙기라고 했으니, 거칠 게 없었다.
그때까지는 딱 1년만 쉬고 다시 일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회사를 관뒀음에도 몸 상태는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다시 조직에 들어가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년 말부터 일을 시작했어야 했다. 그런데 일은커녕,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1년만 쉬겠다고 공언했는데, 벌써 1년 반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조급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계속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