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청년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 때문에, 졸업하면 취업 때문에 마음 편히 숨 쉴 수가 없다. 졸업하고 간신히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힘겨운 숨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야속하게도 같은 또래들 틈에서의 끊임없는 경쟁이다.
코로나 시국은 청년들이 짊어진 짐을 갑절이나 더 무겁게 만들었다. 결혼과 출산은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노력을 해도 얻어내기 힘든 것이 된 지 오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버린 집값과 고물가 앞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웃픈 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를 수 없는 사다리 아래로 내 던져진 모습이다. 온갖 부담감 속에서 간신히 버텨내는 것조차 힘든 것이 청년들의 삶이다. 사실상 그들은 이미 재난과도 같은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
탈출구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핼러윈 축제는 잠깐의 숨 쉴 틈을 찾기 위한 비상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그곳에서조차 그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만 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 끼어 짓눌린 채로, 마치 그런 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태원 참사가 여전히 너무 안타까운 이유는 희생자들이 주로 젊은 청년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순식간에 많은 꽃들이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젊은이들이 꽃다운 나이에 허망하게 죽는 것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짓눌려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숨 쉴 틈을 찾아 나선 그곳에서조차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만, 조금 더 힘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았다. 좁은 공간에서의 대규모 압사라는 특성상 아래에 있을수록, 약자일수록 피해가 더 컸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구조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이태원 참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층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마땅히 그들을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안일함조차도 말이다. 숨 막히는 현실에 내던져진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별로 없었던 것처럼, 참사 현장에서도 그들을 위한 안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청년들이 제대로 숨 쉬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참사였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너무도 안타깝고 뼈아픈 희생을 치렀다. 숨 막히는 세상을 만든 사람들 모두가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숨 쉴 수 있는 출구를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청년들은 계속 재난과도 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는 숨 막히지 않도록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현실에 짓눌리지 않도록 짐을 함께 들어줄 때이다.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재난 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조의 손길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청년들이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사회, 힘들어도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이유로도 압사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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