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역사를 직면할 용기

by 천세곡

화려했던 지난 시절에 대해서야 누구든지 말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과거 자신의 활약상을 말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소위 흑역사는 말하기를 꺼려한다. 어떻게든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쓴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숨기고 싶을 것이다.


개인의 역사도 이러한데 국가는 오죽하겠는가. 전성기 잘 나갔던 역사의 장면만을 부각하고 싶어 한다. 어두웠던 과거는 굳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위기의 때를 이야기한다 해도 우리가 한 잘못 보다는 나라를 구해낸 몇몇 영웅들의 이야기만 하기 바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구호는 역사를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하여 기억하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자랑스러운 업적뿐 아니라 아픈 상처들도 엄연히 마주해야 할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빛나는 역사의 한 순간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어두운 역사의 한 장면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마저 이익의 논리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은 최선을 다해 말하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아픔의 역사는 권력에 의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묻히기 일쑤였다.


그것이 역사에 왜곡이 있는 이유다.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해 휘두르는 것만이 역사 왜곡이 아니다. 권력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 스스로도 왜곡을 많이 해왔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동안 우리는 반쪽짜리 역사를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강압에 의해서 언론과 교과서에서도 말하지 못하던 시대에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탄압 속에서도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로, 소설로, 노래로, 심지어 아이들이나 볼 것 같은 그림책을 통해서까지 입을 열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으로 아픔을 이야기해왔다.


짧은 현대사 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투쟁들의 시작에 이들이 있었다. 어두운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했다. 역사의 아픔을 그냥 묻어버리려는 자들을 향한 뜨거운 저항이었다.


과거에 비하면 현재의 우리는 말하기가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여러 노력들의 결과로 깊은 곳에 묻혀있던 진실들을 끌어올려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역사적 진실을 악용하려는 세력들은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팠던 역사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우리가 붙잡아야 할 고민이고 풀어야 할 난제이다. 어두운 역사를 직면할 용기와 반성의 태도를 가지고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만큼 성숙해질 수 있다.



Photo by Joanna Kosinsk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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