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강아지똥> 리뷰
어린 조카들을 가끔 봐줄 때가 있다. 조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똥'이다. 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지러지게 웃는다. 돈도 아니고 똥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이들은 정말로 똥에 진심이다.
조카들의 방에는 똥모양 인형을 비롯해 똥을 주제로 한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작은 방 책장에는 그림책들도 한가득 있는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며 가지고 온다. 그 책은 역시나 <강아지똥>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이었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그림책을 읽게 되었다. 더 정확히는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읽는 것이기도 했다. 제목을 알고 있는 책이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은 내 기억에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싸놓은 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러다 차례로 참새, 흙덩이, 민들레를 만나 대화를 하게 되면서 좌절과 위로 그리고 희망을 얻게 된다.
한 마디로 보잘것없고 더러워 보이는 똥이 자기 존재의 의미와 필요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모든 캐릭터들이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특히, 강아지똥은 작은 어린아이처럼 귀여워서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보기에 스스로를 강아지똥에 대입해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은 물리적인 크기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에 있어서 작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작고 쓸모없는 것처럼 묘사된 똥에게서 어쩌면 본능적으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강아지똥은 한 줌의 거름이 되어 민들레꽃을 피워내게 된다. 자기희생을 통해서 더 큰 가치를 이뤄낸다는 메시지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잘 표현해 낸 것 같다. 이 책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 준다.
아이들은 작은 존재이고, 어른들은 큰 존재라고 여길 때가 많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른들인 우리 역시 치열한 사회 속에서 존재의 작음과 무력함을 느끼고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수록 번아웃이나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며 커다란 세상 앞에서 크게 좌절한다.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마저 포기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지금 내 모습이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아직 몸을 던져 꽃 피울만한 기회를 얻지 못한 것뿐이라고. 그림책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강아지똥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작은 똥에 불과했다. 하지만, 민들레를 만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되고 기꺼이 몸을 던져 꽃을 피워낸다. 이기적인 삶보다 이타적인 삶이 더 의미 있음을 가르쳐 준다.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이 되었다. 곧 홀씨가 되어 바람을 따라 날아다니며 계속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것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작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작음에도 의미가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Photo by Caroline Hernandez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