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평생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은 나무 아래를 찾아왔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나는 우리 외할머니가 나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벚꽃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돌아갈 때마다 나무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심장이 아려왔다.
대문 밖까지 나와 손을 들고 서 있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 미어지듯 아팠다. 자동차 뒷자리에 매달려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쏟아지는 눈물을 삼켰다. 우리가 가고 나면 매일 불 꺼진 방에 홀로 있는 모습이 떠올라 힘들었다.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소원했었고, 바람대로 보내고 남겨지는 일 없이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었건만 나의 행복은 늘 몽당연필 같았다.
엄마는 나의 중학교 진학 문제로 이사를 결심했다.
이삿짐 싸는 것에 이골이 난다고 했던 엄마는 또 이사를 결정했다. 시골 생활이 행복한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어서 울고 싶었다.
방을 계약했다고 했고, 가져갈 것들을 하나씩 챙겼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외할머니를 떠나는 것이 불안하고 싫었다.
나와는 달리 외할머니는 덤덤해 보였다. 나만큼 사랑하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헌아 이사 가는 거 많이 싫으냐.”
며칠이 지나서야 나를 꼭 껴안고 누워서 물었다. 나는 북받쳐서 울먹거렸다.
“할매도 많이 섭섭하다. 그런데 우짜겄노. 우리 헌아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기에는 여기가 불편하니 엄마가 결정을 그리 내렸지. 가거든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알겠제.”
“우리가 없으면 할매는 쓸쓸해서 어찌 살아.”
“아이고 우리 헌아. 할매 걱정부터 해주고 우찌 이리 착할꼬.”
외할머니는 말없이 내 등을 계속 토닥토닥 두드리기만 했다. 얕고 느린 심장 소리가 들렸다. 멈출 줄 모르는 내 눈물은 베개를 흥건하게 적셨다.
하루가 얼마나 아까운지 조바심이 생겼다. 매일 밤 외할머니 방으로 베개를 들고 갔다. 외할머니는 내가 아기인 듯 작고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흥얼거렸다.
“자장자장 우리 헌아. 검둥개야 짖지 마라. 우리 헌아 잠 못 잔다.”
외할머니는 내가 잠들 때까지 토닥였고, 나는 따뜻한 손을 꼭 잡고서야 잠이 들었다. 어렴풋이 얼굴을 감싸는 느낌과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는데, 솜처럼 부드럽고 포근했다.
야속한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 이사하는 날이 되었다.
이삿짐 차가 도착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 실감 났다.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퉁퉁 부은 눈으로 짐을 옮겼다.
마음 같아선 주저앉아 가기 싫다고 떼쓰며 울고 싶었다. 이모가 시집가기 싫어서 많이 울던 날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조촐한 짐은 옮기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차에 타려고 할 때, 외할머니는 살포시 내 손에 봉투를 쥐어주었다.
“요걸로 공책도 사고 문제집도 사라. 할매가 주는 돈이니 공부도 잘될 것이다.”
하얀 봉투를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도 똑바로 못 본채 차는 출발했다.
뒷좌석을 돌아보니 짐 때문에 외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어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우리 외할머니는 잎이 다 떨어진 나무처럼 서 있었다.
엄마는 나를 꽉 안았다.
엄마도 동생도 눈에 많은 말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떠나고 싶지 않은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외할머니집 앞 당산나무처럼 내가 갈 때까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길 기도했다.
사백 년이 넘은 그 나무가 장엄한 기세로 서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