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음의 방향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잊지 않는다

by 김현정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기억을 잃어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잊음은

쇠퇴가 아니라

견딤에 가깝다.


하루는 늘 넘치는데

몸은 하나뿐이다.

불러야 할 이름은 많고,

책임은 겹쳐 쌓인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붙들지 않기로 한다.


어제의 말 한마디,

지나치게 아팠던 장면,

끝내 풀리지 않은 마음.

그것들을 내려놓지 않으면

오늘은 시작되지 않는다.


이런 잊음은

살기 위한 정리일 것이다.

의지에 가까운 망각.


그러나

또 다른 잊음이 있다.


그것은

내려놓음이 아니다.

기억이 길을 잃는다.

이름이 먼저 흐려지고,

시간이 제자리를 잃고,

사람은 어제 안에 머문다.


같은 ‘잊음’처럼 보이지만

방향은 다르다.

하나는 오늘을 향하고,

하나는 돌아갈 곳을 더듬는다.


그래서

자주 잊는 사람을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그는 아직

하루의 문 앞에 서 있다.


기억을 지운다는 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어제를 덜 붙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 앞에서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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