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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12. 2024

가을밤과 크로스핏

브이로그

운동을 몇 년 동안 해보다 보니,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그리고 몸의 근육이 온데간데 붙어있어서 사람이 단단해 보이기도 한다. 가을이 오니까 짧게 입었던 레깅스는 추워서 단독으로 입기 힘들다. 하지만 꿋꿋이 참아내고 2부 레깅스를 입는 이유는 크로스핏의 열 감 때문이다. 어차피 갔다가 오면 몸은 열로 인해 가을의 낯섦이 사라져 있을 테니까 말이다. 가을밤은 선선하고 좋다. 아직 가을나무이파리들은 익지 않아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밝게 빛을 머금고 있는 잎사귀들의 사각거림이 맛있다.


크로스핏을 떠나기 전에 안에 입을 속옷을 챙겨본다. 그렇게 입고 나면 나의 몸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게 된다. 몸은 아직 완성체가 되지 않아서 아쉽다. 내 여정은 아직도 항해 중인가 보다. 그렇게 쳐다보고 난 후에 나는 레깅스를 챙겨 입고 티셔츠를 입는다. 어떨 때는 달라붙는 운동복 상의를 꺼낸다. 그렇게 입으면 원래 여름날의 운동복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가을이다. 이렇게 입고 나갔다가 감기 걸리기 일쑤다. 밤도 곧 어둑해지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보이지 않겠더라도 말소리는 들릴 것 같다. 속으로 지금이 어느 때인데 여름같이 입고 나왔나 싶어 할 것이다. 한국인의 필수 억양법도 같이 넣어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후드집업을 하나 챙겨든다. 그것을 입으면 사람들의 잔소리는 적어지고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후드집업이 있다. 대학교 문구가 그려진 후드들이다. 비록 내가 다니지 않았지만 대학생의 패기와 대학생의 낭만만큼은 후드 안에서 머무르기 때문에 자주 입는다. 그렇게 젊게 입는 버릇이 들다 보면 어느새 스타일이 완성된다. 마치 고 다이애나 비의 세련된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착각도 한다.


이제 밖으로 나선다. 밖에 나서면 생각보다 아직은 따뜻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 몇 곡을 선정해 본다. 그 사이에 오른쪽 2번째 발가락이 삐죽 튀어나온 운동화를 챙긴다. 신발을 신고 보니 알맞은 시기에 밖을 향해 나간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나가자마자 가볍게 뛰어본다. 하나둘 구호에 맞춰서 뛰면 구장을 반 바퀴 돌게 된다. 그러면 이제 구룡산을 지나 빌라골목길을 넘치도록 걸어본다.


빌라골목골목마다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한가득 서있다. 그중에서 남양유업이 서 있는 건물이 눈에 띈다. 나에게 그래서 이정표가 된 것 같다. 그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정다운 벽돌로 층층이 쌓여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문의 틀에서 틈도 보이지 않는 검은색 유리창이 안심된다. 나는 그 길에서 꺾어서 일직선으로 걷는다. 걸으면 나오는 할머니들과 젊은 아가씨, 그리고 담배를 질겅 물고 가는 아저씨들이 보인다. 그들의 인상은 다양하게 착해 보인다. 내 동네사람들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도 있나 보다.


이제 곧 크로스핏장이 나온다. 구역에 오게 되면 신이 난다. 음악소리가 쿵쾅 울린다. 그리고 삐죽 들어가 보면 내가 먼저 와 있는 사람이다. 이미 운동을 시작해서 열심히 기합을 넣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시작하는 운동시간대에는 내가 가장 먼저 와 있다. 박스 앞에 앉아서 그 사람들의 운동 루틴을 훑어보고 멍 때린다. 그 멍 때리는 시간이 어쩌면 나의 하루에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에 이상하게 고요함이 섞여있고 나만의 공간에 와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간혹 가다가 반가운 사람이 있으면 인사를 나눈다. 그렇다고 나의 틈 같은 명상시간을 해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내 차례의 운동이 시작된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더라도 몸이 뻐근하게 풀린다. 어제도 했고 내일도 할 운동인데도 말이다. 멍자국은 오른쪽 허벅지를 타고 내려가서 발목까지 이어진다. 그래도 멍자국이 시원하게 보이는 레깅스를 입는다. 나는 하소연하면서 크로스핏을 하지만 그래도 그 운동이 좋다. 시간에 쫓기는 듯해 보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집중하게 되고 내 몸과 내 정신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서 스트레칭을 끝마치면 오늘의 강습이 시작된다.


강습은 간단하게 보여주면서 오늘의 와드를 설명해 준다. 와드란 오늘의 운동을 뜻하는 약어다. 와드를 누가 짰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면서 운동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혹해 보이는 와드일수록 사람들의 수가 현저히 적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나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운동 앞에서 다시 작아진다. 케틀벨도 가장 작은 것, 바벨도 가장 가벼운 것 위주로 들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괴물같이 젖 먹던 힘을 끌어내는데 나만 왜 빈약하게 자라지 않는 것인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운동이 좋아서 오는 것이니까 최대한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최선을 다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운동이 시작된다. 운동의 시간은 짧지만 강렬하다. 그리고 배가 아프게 만든다. 복압을 너무 줘서 그런지 스쾃 하다가 더부룩한 불쾌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스쾃를 한다. 남들보다 깊이 못 내려가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내려간다. 후. 한 번 다시. 이 마음으로 계속해서 운동을 진행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새 바벨을 들고 저크를 한다. 저크를 힘차게 끌어올리고 싶은데 쇄골에 맞을까 봐 덜덜 거리면서 올린다. 그래도 여린 팔이 어떻게든 버텨준다.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개운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한테 가끔 운동은 벅차다. 나에게 숨을 몰아쉬는 기계가 돼버린다. 숨에만 집중하다 보면 뇌 속에 피가 빠르게 솟구친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한다. 낑낑거리며 다시 일어나서 바벨을 정리하고 오늘 내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정리한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치우려고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몸이 무겁다. 그리고 나는 박스(크로스핏장)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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