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완벽주의자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들은 자신이 설정한 기준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그러한 행동들이 습관이 된다. 이 습관들로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하며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찍 일어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이를 위해 의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를 창백하게 시작하고, 피곤에 지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행복해한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났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하지만 그 뿌듯함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아마도 그 습관이 무너질 때까지일 것이다. 습관을 유지하다가도, 실수로 5분 늦게 일어났을 때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이로 인해 큰 충격에 휩싸이며, 자신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다시 거울을 보게 될 때 그의 눈은 그나마 맑아 보이지만,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완벽주의자라며 오늘 하루를 망쳤다고 자책하고,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 하루가 빨리 끝나기를 기도한다.
완벽을 추구하다가 넘어지는 사람들은 상당수다. 그들을 종종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용어는 완벽해지기 위해 자신을 아껴 두었다가 나중에 힘을 발휘하려는 사람들을 뜻한다. 많은 자기계발서에서는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서툴러도 되니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완벽함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기분은 참기 힘들다. 그 기분을 견디기 어려워 결국 사람들은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되는 것 같다.
완벽하게 옷을 다려입고 세상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그전까지는 나만의 루틴과 정해진 행동들로 이루어진 하루라 통제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신호등이 말썽을 부리고, 내가 걷고자 하는 걸음의 수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렇게 하루가 엉망이 되면서, 사람들은 결국 포기하게 된다.
그 포기는 단순히 창밖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루를 잘 보낼까 사색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루의 색상이 빠져 나가 흑백 영화, 무성 영화처럼 변해 아무도 자신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버스 안에서 시작해 회사에 도착한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웃지 않고 지나간다. 오후 6시까지 버텨내며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나마 나의 습관 중 저녁에 할만한 일은 독서였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도 책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책을 펼친다. 그러나 내가 읽는 것은 마치 산스크리트어처럼 느껴지는 언어일 뿐이다. 한국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글자들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 왼쪽으로 기운다. 결국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만다.
예상대로, 오늘 하루도 망쳤다. 이 예상을 깨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깊이 잠겨 있다. 그렇지만 오늘도 수고했다고 캔맥주를 마신다. 톡 쏘는 탄산과 깊은 발효의 맛. 그 발효된 보리의 알알이를 음미하며 마시다 보면 결국 잠과 싸우게 된다. 잠들기 전에 일기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에 대충 펜을 찾는다. 간신히 찾은 검은색 모나미 펜으로 오늘 하루를 적어본다. 욕설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나는 완벽하지 않았던 하루. 이 하루들이 쌓이다 보면, 내가 무쓸모한 인간으로 분류될까 봐 걱정된다. 자기 발전 없는 인생, 늘어가는 뱃살도 걱정이다. 체력이 버텨주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을 기약해본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첼로 선율이 음울한 노래를 부르다 줄이 끊긴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내일도 같은 하루였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