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명의 탄생 이후 사람들은 다 배불리 살고 있는가
지구가 탄생한 이후, 굶어 죽지 않은 동물의 종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모든 생명체는 한 번쯤 혹한기를 거치고 겨울을 뚫고 나오다가, 자신은 희생된 채 그 자식에게 유전자를 물려주며 살아남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종들이 여기까지 이겨낸 온것이다. 인류도 그렇게 탄생했고, 그렇게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는가? 인류는 좀 더 잔인하게도 단순히 굶주림만으로 혹독함을 이겨낸 것이 아니다. 인류는 전쟁과 학살, 지독한 종교 전쟁과 영토 다툼으로 여전히 살상 무기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하나둘씩 처단하면서 살아남고 있다. 그런 인류의 모습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떠올려보자. 폭탄과 지뢰가 난무하는 곳에서, 아이들은 나비처럼 날다가 벌처럼 쏘여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희망찬 기도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전쟁과 지옥 같은 분단. 이 분단 속에서도 살아남고 죽어가는 이들이 있다. 쌀 한 말도 없어 아이에게 죽 한 번도 먹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이들. 아이들의 죄는 단지 어디에서 태어났다는 이유일까? 하느님의 원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혹독하고도 가혹하다. 그들이 차라리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죽었더라면, 이런 험한 세상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파병 나가는 어린 소년들. 그들의 젊음은 총과 칼 앞에서 헛되이 낭비되고, 돌아오는 것은 국위 선양뿐이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 혈육에게는 오로지 '피'로 얼룩진 전쟁. 러시아의 파병으로 돌아오지 못할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그들의 육체와 정신은 과연 건강할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전쟁의 최후는 결국 우리 모두의 손에 달린 희생이 아니던가. 과연 그 희생이 우리에게 지녀야 할 정신인 걸까?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로, 가자지구가 점령되었을 때 걱정되는 것은 파탄 난 가정들뿐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세계에서는 평화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외에도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외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점령과 과격한 폭격이 초점 맞춰지자마자 시작되는 총소리. 그들 또한 많이 죽어나가고 있다. 핵심 인물만 죽이는 것으로 끝나는 전쟁이 아니었다. 현재 우리 가까이에서도 생명이 오가고 있다.
대한민국도 현재 분단 국가로,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항상 뉴스에서 보도된다. 그렇게 어언 70년, 80년이 지났다. 아직도 '빨갱이'라고 부르며 좌파를 향해 갈라치는 민족들을 보며, 이념으로 우리의 피가 나뉘고 혐오가 냄새처럼 쉽게 확산된다. 문화적으로 결코 좁혀지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도, 모두가 바라는 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은 권리장전처럼, 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쟁이 터져 결국에는 학살과 상처만 남고, 수많은 지식인들과 역병까지 퍼져나가 아이들까지... 그렇게 해야만 피 묻은 하얀 장미가 퍼져 울리는 것일까.
나는 정치적으로도 현재의 정당이나 반대하는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존 레논처럼 Imagine 노래에 나오는 가사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다 평화로운 날이 올 테인가?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온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그 꿈이 노스텔지어가 아니기를 바라며 꿈꿔본다. 나는 밤잠에 들 때, imagine을 들으며 오늘의 하루를 마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