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같은 소설: 트라우마를 가지면 아이가 가지기 싫어질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나는 언제나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내가 아이였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 떠난 여행이 너무 좋았고, 아빠가 사주는 떡볶이는 달콤했다. 맵지만 달콤한 그 떡볶이가 좋아서 학교에 돌아가자마자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너만 안 먹어봤냐"며 학교 앞 떡볶이집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라면사리까지 푹 끓여 만든 즉석 떡볶이는 친구들의 우정이 가득 담겨서인지 매운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점에서 행복한 유년 시절,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새내기 시절, 나는 술도 못 마시는데 강제로 마시게 된 술자리에서 만취했고, 나를 향한 남성들의 시선이 무서웠지만 대항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 그저 흔들리는 의자와 나무 판자들, 그리고 그 백색 조명들이 나를 깨웠다. 나는 몰랐지만, 여자 동기들이 나에게 "너는 강간당했다"며, "선배 오빠들이 너를 데리고 나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말해주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는 몰랐다. 그 느낌과 불결함도 몰랐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는 트라우마가 작동하는 듯했다. 그 트라우마는 술자리에서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것, 남자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빨리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사이다만 마시는, 술자리를 싫어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재미없는 친구로 낙인찍히며, 나와 함께 학교 축제를 가자는 동기 하나 없었다. 휴학을 해도 불러주는 이 없는,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33살이 되었다. 나이가 들자 엄마의 독촉으로 소개팅과 맞선이 이어졌다. 나는 하루하루 날들을 세며, "이 사람은 착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선을 보았다. 선을 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물어본 것은 술에 대한 이야기였다. 상대는 술과 담배의 유무에 대해 집착하며 그 주제로 3시간이나 떠들곤 했다. 결국 잘되지 않은 소개팅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혼자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내가 벌이지 않은 일로 이렇게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가 되는 걸까 싶었다.
그러다 결국 결혼할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잘생겼고,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무엇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직장이 번듯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할 운명이라고 느끼고 서둘러 결혼을 결심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난 지 8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일부 사람들은 내가 임신해서 결혼하는 거라며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 때문에 나는 혹독하게 바디프로필까지 찍어가며 결혼 준비를 했다.
나는 신혼을 매우 즐겼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무척 달콤했다. 그는 언제나 나를 곁에서 지켜주었다. 그리고 내가 낙담시키는 말을 해도 받아들여 주었다. 그것은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결정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꽤나 놀랐지만, 나의 몸에서 나오는 생명체이고, 그의 경제 상황도 여의치 않았기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7년이 지났다. 어느새 40대를 향해 가고, 나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를 매일 산책한다. 거기서 느끼는 후회감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곤 한다. 왜 나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 내가 강간당한 사실을 말하고, 그것을 치유받았더라면 아이를 낳았을까? 그래도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을까? 지금도 사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지만, 이런 마음이 혹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고통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나는 주름이 하나둘 늘어났다. 남편의 수입은 그 당시보다 좋아져서 생활도 나아졌다. 이 정도 수입이라면 아이 하나쯤 낳아 떡볶이의 즐거움을 알려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지금 후회하는 것 같은데, 그 후회조차 후회하고 싶지 않다. 후회로 가득한 채로 아이에 대한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 미소는 언제나 놀이터에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뛰놀고 있고 아이들은 누군가 나 대신해서 낳아줄 것이다. 그들의 아이들은 나보다 하얗게 웃음을 지어줄 것이고 떼없이 맑은 하늘 아래 밑에서만 자랄 것이다. 내가 안해도 될 일 같게 느껴진다. 아닌가? 나 또한 자격이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