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하고 싶어 하는 일 없이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꿈을 꾸기 힘든 세상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자신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 그리고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어느새 돈벌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삶은 삭막하다. 삭막하다 못해 사막의 오아시스조차 없어서 물도 길러 먹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사막의 삶을 살아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사막의 삶은 지구 건너편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것의 이유 중 하나는 대한민국에는 다양성을 포용하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라고 포용해 줄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제는 세상의 예술을 바라보는 가치가 돈으로 바뀌어서인지 경제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젠 신물 난 월스트리트 저널리스트들의 글만 채워져 있다. 그들의 글에는 돈에서만 느껴지는 짠 내가 있다. 그들의 신념은 아마 돈에서 오는 것 아닐까 싶다. 만약에 그들의 꿈이 돈이라면 나는 그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소중한 꿈인 돈을 으깨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저널리스트의 글을 읽고도 감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인문학으로 목마름을 채우려고 한다. 또 요즘의 2030은 소설을 좇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넷플릭스에서 본 감명받은 영화들은 가득한데 말이다. 포레스트 검프, 죽은 시인의 사회 등의 회자되는 영화들 속에서 울림이 있어도 사람들의 심장은 차갑기만 하다. 심장소리가 그저 쿵덕쿵덕 뛰기만 할 뿐 다른 박자는 없었다.
나는 꿈꾸는 애벌레가 낫다는 제목을 짓고 나서 쓰는 글이다. 이 글은 현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외침을 울리고자 쓰는 글이다. 그들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영화 같은 삶을 지향하다 보면 자신의 삶이 조금 아름답게 풀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한동안 유명했던 박세로이의 기가 막히는 스토리에 사람들은 판타지라고 놀렸다. 놀림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익어 나는 열매가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그 열매의 수확 안에서 애벌레들은 기어 나올 것이고 결국 한 사람의 성공이 비롯된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현대인들이여 그러니 일어나보아라. 자신의 지긋지긋한 상사 앞에다가 면전에 대고 말하지는 말자. 나는 날개가 있는 사람인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자신의 한계를 이겨낼 수 있는 의지가 있다. 다들 이 미친 부동산 값을 타협하지 않고도 설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나만의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투자하고 노력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나는 그것이 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 하나인 돈을 많이 벌겠다는 일가견 하나로도 충분하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사람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에 나오든 잡지 커버가 되든 우리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인류는 그렇게 꾸준하게 성장한다. 나는 그런 애벌레들의 탈출을 원한다.
애벌레야 그러니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믿고 굼벵이가 되어보자. 껍질 속 안에 들어가 있는 애벌레는 어찌 보면 파란만장한 꿈을 가지고 날개를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변태로 준비하는 애벌레야. 너는 죽지 않고 날아갈 것이 느리라. 날아가서 한 송이의 장미 속에 파고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도약해 보자. 애벌레야 너는 영겁의 삶을 살 준비가 되어있으니 차라리 비뚤어진 날개로라도 활짝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