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라고는 짤도 없던, 그래도 겨울 난방의 주인공 연탄의 중간 소매상 겸 일용 잡화를 취급하던 동네 하나뿐인 쪼그만 구멍가게, 한참이나 숨 가쁘게 '헉헉'대야 힘들게 도착하는 소제동 언덕 끝자리 어디쯤에서 근근이 우리 식구들의 삶을 책임지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4형제를 건사해야 할 막중한 무게가 두 어깨를 얼마나 내리누르셨을지. 우직했으나 그 누구보다도 성실함을 실천하시던 아버지의 엄청난(?) 빽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가 누렸던 겨울 목욕 이야기입니다.
6~70년대 우리네 난방을 책임졌던 연탄, 동네 유일한 보급처는 아버지가 꾸리셨던 구멍가게 판매뿐이었지요. 연탄 공장과 동네의 연결 고리셨던 아버지나, 구멍가게에 혹여 일이라도 생기면 동네 난방은 딱히 도리는 없었습니다. 얼마나 막중하고도 대단한 일이었던지요?
그렇게 연탄 공장과 고리가 연결된 아버지도 당시 공장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베푼 복지(?) 혜택, 숯 껌정을 씻어내고 일을 마치도록 한 배려의 일환이었을 목욕 시설 활용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설이나 추석 같은 우리 고유의 명절 즈음이면.
요즘처럼 노사가 협상을 통해 복지가 결정되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회사 측의 일방적 시혜(?)였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말입니다.
연탄 공장 노동자들이 이용했을 목욕탕 모습 상상이 되실까요? 탕 내에 가둬 둔 뜨거운 물의 색깔은요? 1년에 겨우 한 두 번 연례행사처럼 이용했던, 나 같은 이용자도 많았을 터이니 목욕물의 탁도 또한 어땠을까요. 수시로 탕 봉사자들이 잠자리 채 모양의 기구를 들고 이용객들의 때를 건져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혀 끌끌 차며 TV 앞에서 '아니 어떻게 저런 더러운 물을 식수로.......' 라며 시청 중인 아프리카 지역의 위생적이지 못한 식수 상황과 겹쳐 보였던 그 세월이었으니까요.
저렇게 탁하고 시커먼 물로 목욕을...... 하지만 그나마 설과 추석 무렵만 누릴 수 있던 혜택을 아버지 빽으로 누렸지요. 비록 요즘 시각으로야 안타까워 어쩌냐며 불쌍(?)히 여길 수도 없진 않겠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누리지 못했던 겨울 목욕을 아버지 덕분에 누릴 수 있었으니.
가끔은 목욕탕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며 옛 추억으로 떠올리게 되는, 아프면서도 한편 자랑스러웠던 겨울 목욕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친구들에게 제가 얼마나 자랑했게요. 아버지 대단하심을...... 비록 연탄 배달이라는 힘들고 어려운 일, 인정받은 적 한 번 없었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