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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의 고백

말없이 지켜봐 준 40년

by 박점복


잰걸음으로 뛰어도 한 바퀴 돌으려면 가도 가도 끝이 없었던 운동장, 트랙 둘레가 200m쯤이나 되었으려나...... 얼마나 넓었던지 품에 안기엔 너무도 벅찼다. 초등학교 그 운동장이 언제부터였을까 갑자기 줄어 요만하게 보이기 시작한 게.

강산이 두어 차례 바뀔 만큼 세월 흐른 후, 내려다본 운동장은 이미 그 옛날 위용은 오간 데 없. 한 줌 손바닥 크기로 쪼그라들어 버렸으니. 누가 저렇게 좁힌 걸까? 아니면 운동장은 의구한데 순수를 내동 뎅이 친 내 탓이었을까.......


40년 인연 동안 나의 말없는 출퇴근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뿐, 여전히 변한 적 없는 운동장, 속에 담긴 애환을 함께 나누자며 간절하게 손 뻗어 잡아주길 리도 원했다는 데. 도무지 눈치조차 채질 못했으니 동거 동락한 게 맞기는 한가?


퇴직을 6개월 정도 앞둔 어느 날, 저들의 애절한 속삭임 소리가 그제야 조금씩 조그맣게 내 귓전을 맴돌기 시작했다. "왜 그리도 매몰차게 눈길 한 번 안 주셨냔다"는 원망에 "아니 뭐라고......., 내가?" 라며 쭈뼛쭈뼛 의아한 대꾸만 돌려주고 만다.


소 닭 보듯 데면데면 '너는 너, 나는 나' 였다나. 무슨 대단한 벼슬이나 꾀 찬 듯 고개 뻣뻣이 들고 못 들은 채 하면서...... 그랬던 운동장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싶어 지다니.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지? 미안해!" 이렇듯 이별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철이 드는 이 아이러니 여전히 이해 난감이다.


불러내는 손짓에 손 쌀같이 반응하며 뛰어 나서는 아이들, 이쪽 농구장에선 벌써 7반과 8반 녀석들이 선수 같은 실력으로 주어진 길지 않은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저 쪽 넓은 운동장엔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도무지 코로 들어가는지, 먹는 둥 마는 둥 잽싸게 처리한 후 차지한 1학년 아이들의 축구 시합이 한 창 진행 중이고. 조금만 늦었어도 3학년 선배들에게 뺏길 뻔했다나 뭐라나.

서로가 운 좋게 차지했다며 맘껏 그 넘치는 체력 발산하고 말고다. 운동장 뺑두른 맞은편 스탠드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발랄하기 이를 데 없는 수다(?)로, 심각한 듯 고민을 서로 주고받는 모습으로 분주했다.


평행봉과 철봉이 나란히 자리 잡은 씨름 모레판이 곁들여 있던 곳에서는 특별히 남학생들의 근육 자랑이 한창이다. 서로 매달려서는 턱걸이 개수로 시합 아닌 시합을 벌인다.


"선생님! 턱걸이 몇 개 하세요?"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며 걷고 있던 내게 훅 치고 들어온다. 못 들은 척 지나가는 게 상책 아닐지, 이럴 땐. 얼른 말을 돌린다. "와우! 벌써 몇 개 째라고? 대단한 데......."


수업시간엔 어렵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졌던 녀석인데 영어 아닌 턱걸이만큼은 선생님께 뒤지지 않는다며 활짝 웃던 순수도 운동장은 넓은 품으로 포근히 안아 주었다.

'님이 오시는지'를 속으로 허밍(humming)하며 두 바퀴째를 막 돌고 난 후 습관처럼 담쟁이덩굴이 지붕을 덮은 벤치에 자리를 잡아 본다. 여전히 젊은 패기를 아무런 제약 없이 펼쳐내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난 40년을, 남은 6개월을 보내면서 훌쩍 다가 온 운동장과 얘기 중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넓기만 했던 그 운동장이 어느 순간 쪼그맣게 손바닥만 해졌던 요술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며 퇴직을 앞둔 마지막 학교에서의, 아이들을 맘껏 뛰놀게 하며 저들의 이상을 하늘 높이 솟구치게 하던 운동장을 새삼 정겹게 기억의 사진기로 한 장면씩 찍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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