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디'의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 전성기를 구가하며 아이들의 최애곡 지위를 누리던 1988년, 중 2학년 유라(가명)의 추종이 쉽지 않은 끼 발산으로 인기를 독차지했던 점심시간, 학교 운동장은 가히 열광의 도가니였다.
훤칠한 키에 체형까지 최절정 가수 이상은을 닮았으니 시너지 효과까지 한 몫하지 않았겠는가. 운동장 주변 스탠드와 3,4층 교실 창가는 이 무료(?) 공연 놓칠 수 없다며 식사를 마치는 둥 마는 둥 몰려든 아이들로 북적였으니 오페라 극장의 관중석과 흡사했다면 너무 비약일까.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발견이 쉽지 않았던, 하지만 어린 유라가 감내해야 했던 아픔은 너무 컸나 보다. 남들보다 늘 한 발 느린 담임인 나의 미련함 탓도 있지만 드러내기 어려웠을 유라의 가정사였기에 뒷북을 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다리 골절 사고로 입원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유라 할머님을 비로소 만나 뵐 수 있었다. 학교를 찾으신 할머니, 담임인 내게 사고의 자초지종과 베일에 감춰졌던 유라의 아픈 가정사를 털어놓으셨다.
병원에 입원을 했음에도 간호 및 수발을 들어줄 가족은 없단다. 할머니 품에서 커야만 했던 어간의 사정을 비로소 듣게 되었으며 여전히 돌봐야 하는, 초등학생 동생이 있어 할머니마저도 유라를 케어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전하며 난감해하셨다.
부모님의 피치 못할 사정 역시 이해는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치밀어 오르는 무엇인가에 속이 몹시 상하고 말고 였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면서도 말이다. 입원 수속조차 밟아줄 사람마저 없었으니 오롯이 담임인 나의 몫이 되고 만 것이다.
담임으로서의 책임감보다는 유라네 가족들의 태도가, 물론 이러지도 저럴 수도 없는 사정이 있었다손 친다 해도, 못마땅하고 미워 유라의 병실을 지켰던 게 솔직한 심사였음을 이제야 털어놓게 된다.
투철한(?) 책임감의 발동, 애틋함이 더 컸을까 아니면 유라네 식구들의 나몰라식 태도가 미웠던 게 더 크게 작용했을까?
사랑과 관심도 그 원인이 무엇일까가 이리도 중요함을 새삼 깨우치며 그때를 떠올려 보게 된다. "미안해, 유라야!" 더 따뜻한 사랑으로 널 간병하지 못했던 게...... 온전함으로 못하고 애틋함 반, 못마땅한 미움 반으로 대했던 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걸려 쉽게 넘어가질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