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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근무지 원곡고등학교가 내게 선물한 세계여행

다문화 지역-안산 원곡고등학교

by 박점복

무려 10년을 한결같이 평촌역에서 8시경 나를 태워 30분쯤 후면 어김없이 안산역에 내려주는 4호선, 당고개와 오이도를 연결하며 세상사 얼핏설핏 파노라마처럼 쳐 주던 고마운 친구였다.


마지막 교직 생활 근무지로 나를 품었던 안산 원곡고등학교를 향해 가는 출근길 전철은 수많은 삶들로 북적이지 않은 적이 없다. 물끄러미 학교에서 만날 '생기 발랄'을 떠올리라면 부대낌도 잠시 어느덧 중간 지점 상록수, 고잔역을 지다.

사진 출처-원곡고 홈페이지

습관처럼 몸과 하나 되어 지금쯤은 어느 역을 지나겠구나를 거의 자동 반사처럼 알아맞출 수 있었으니.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잖던가? 무려 10년을 날이면 날마다 만났으니.


타자마자 스마트폰에 눈코를 박고 고개를 숙인 채 뭔가에 열중인 승객들, 경로석에 자릴 잡고는 세월 반추하며 '라테'를 연발하는 어르신들, 빈자리 뺏길세라 손 쌀같이 낚아채는 다양한 군상들 속에서 조각 퍼즐에 불과하지만 몫을 나도 당히 해내고 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풀린 피로가 원인이었을까 사정없이 밀려오는 졸음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전철의 움직임에 몸을 맡겨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는 직장인들까지. 체면은 잠시 접어 둘 수밖에.


다행히도 열에 일곱여덟은 앉아 갈 수 있는 혜택을 누렸으니 출근길 지옥철이라는 어려움은 남의 집 일이었다. 그렇게 또렷하던 눈망울이 얇디얇은 눈꺼풀 무게 하나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대는 가 싶더니 하필이면 목적지 안산역 바로 전쯤에서 절정에 이를 건 또 뭔가.


잘 버텼는 데 그만 깜빡할 사이 목적지 다음 역인 신길온천역이다. 나를 내려놓고는 아무 일 없었다며 야속하게 떠나던 기차, 발동동 구르며 원망했던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은 되었으니 적은 건 아니고 말고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안산역에 내려서는 나를 기다리는 마지막 근무처, 10여분쯤만으면 도착하는 곳까지 쳇바퀴 돌 듯한 일상을 10년 동안이나 쭉 계속했다는 거 아닌 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누구하나 안 바쁜 이 없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역전 지하보도를 건며. 한결같은 몇몇 일상이 변함없이 나를 기다다. 야채와 과일을 보도 좌판에 펼친 채 팔고 계신 아낙네와 하루도 빠짐없이 자리 지키며 사주(四柱), 팔자, 작명 등 운세를 보시던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까지.


혹시라도 안 보이면 괜한 걱정까지 했으니, 어르신이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닐까....... 채소 장사 아주머니는 어제 벌이가 시원치 않으셨을까?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 특성상 다양한 액세서리류를 파시는 사장님까지. 지금도 세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지하보도의 익숙한 풍경이다.

도로변 양쪽 길가는 온통 중국식 한자 간판과 아시아계 상인들의 가게들로, 그들의 금융거래를 책임지는 금융기관들 또한 당당하게 한 자리하고 있다.

베트남, 인도, 네팔, 인도네시아, 러시아, 우즈베크, 캄보디아, 파키스탄, 일본, 스리랑카의 음식점들까지 없는 것 말고는 다 있는 작은 세계 그 자체였다. 도대체 우리 나라 같지 않은......


이렇듯 한국이지만 한국 아닌 것으로 온통 둘러 싸인 길가를 지나면 비로소 내 교직 생활의 종점, 원곡고가 반갑게 날 맞았다. 다양한 세계를 맘껏 둘러보고, 맛보며 여행토록 기회를 제공한 고마운 원곡고 출근길, 이따끔씩 세계 여행 욕구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 때면 주저 없이 떠날 수 있는 출근길, 아니 여행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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