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작종이 울렸는 데도 여기저기서 여전히 수군수군 어수선하다. 반장의 힘찬(?) "차렷!" 구령에 순식간 분위기는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지며 선생님을 맞겠다는 채비를 한다. 바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교실 상황을 한방에 정리해 주던 차렷!, 경례! 가 의도한 긍정적이며 궁극적인 소기의 목표는 달성된 것이다. 그랬으면 된 것이지 "차렷!", "경례!"라는 구령 사용에 왈가왈부 무슨 토를 달겠는가만, 궁금했던 건 사실이다.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다른 나라, 특히 유럽이나 미국 지역에서는 수업을 어떤 식으로 시작할까? 나름의 독특한 방식은 있긴 한 걸까? 교실에 들어 서시는 선생님과 맞이하는 학생들의 상봉 장면은 몹시 궁금했다.
반장 친구가 일어나 힘찬 목소리로 우리처럼 좌중을 압도하며 차렷!, 경례를, 그러니까 저들 언어로 "attention!", "bow!"를 외칠까? 영어를 배우며 열심히 외웠던 단어의 용도가 이런 게 아니었단다. 실제 저네들의 수업 시작 장면에서는 한 번도 쓰이질 않는다는 것 아닌가.
영어를 열심히 배웠다는 징표라도 되는 양 영어 시간엔 특히 차렷 대신 "attentiin!"을, 경례 대신 "bow!"를 자랑하듯 쓰곤 했었는 데. 영어 시간에는 영어로 해 보는 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먼저 영어를 쓰도록 은근히 강요(?) 한 게 영어 교사였던 나였지 않은가.
당연히 군대에서나 쓰이는, 사열 시 지휘관이 도열한 무리들을 통솔하며 상관에게 경례하기 위한 구령으로 "차렷"을 쓸 뿐이라는 것 아닌가? 경례 역시 그런 용도로 사용됨을 알려 주었다.
수업 분위기 집중용으론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우리에게 뿌리 깊게 박힌 일제와 군사 문화의 잔재를 다시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유용하게 쓰이면 됐지 라며 그냥 단순하게 넘길 문제 또한 아니고 말고다. 별걸 다 끌어다 트집 잡느냐는 의견 역시 왜 없겠는가.
게다가 저네들은 우리처럼 전체 학생들을 모아 놓는 '애국 조회, 또는 '반성 조회' 같은 개념의 행사 자체가 있질 않았잖은가.
효과와 더불어 발생하는 구설수를 없애려는 목적의 일환으로, 또는 군사 문화의 거부감을 줄여줄 방편이라며 우리 전통 관혼상제 예법에서 사용하는 "공수(空手)!" "배(拜)!"로 바꿔 보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존경심의 발로가 딱히 아니기는 매 한 가지였다. "일동!" "인사!"는 좀 나을까?
물론 서양의 방식이 꼭 옳고 좋은 것만을 아닐 테지만 심사숙고해 볼 만한 사항임엔 틀림없다. 교실 문을 들어서며 선생님이 먼저 학생들에게 "얘들아! 안녕!" 인사한들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할 일은 아니잖는가? 강요나 지시가 아닌.
아니면 선생님을 먼저 알아본 학생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며 분위기를 새롭게 하면 더 좋고 말이다. 언젠가부턴 이렇게 변화된 인사법을 사용하고 있는 나와 아이들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영어 시간이라며 "Hello!, Everyone!"을 즐겨 썼지만 말이다.
물론 방식을 바꾸려면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리는 건 감수해야 하리라. 또한 새로운 형식에 잘 적응하지 못해 여전히 떠들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아예 인사조차 안 하고 자기 볼일에 열중인 아이들도 왜 없었겠는가만.
이렇게 인사 예절법을 바꿔 보았더니 익숙해지면서 누구랄 것도 없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동시에 "안녕!" "안녕하세요!"가 섞이며 지시나 통솔에 따른 인사가 아닌 서로에게 존중감을 표시하는 인사법으로 바뀌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반장의 구령 "차렷!", "경례!" 또는 "공수!", "배!"를 쓰고 있는 선생님과 학생들도 있을 테고 또는 먼저 본 선생님이, 아니면 학생들이 자연스레 "안녕!", "안녕하세요!"로 인사를 나누는 교실도 여전할 테지만 교직을 마무리할 즈음 사용했던 후자 방식에 마음이 훨씬 끌리는 건 왜인지 모를 일이다.
억지나 강요, 지시나 통제가 아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본 누군가가 인사하는 자연스러움이 물결처럼 널리 널리 퍼졌으면 어떨는지. 예전처럼 한 교실에 60명에 육박하는 아니 그 이상이었던, 발 디딜 틈조차 부족했던 소위 '콩나물 교실' 세월도 아닐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