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말 못 하는 동물이라도 주인이랍시고 함부로 막 부릴 수만은 없다. 엄연히 환희를 누리고 사는 생명체이니 뭔가를 호소하듯 신호를 보내면 알아차릴 능력은 그래도 갖춰야 주인 자격이 인정을 받지 않겠는가?
차마고도 그 험난한 좁고 구부러진, 게다가 울퉁불퉁한 돌부리들 천지인 길을 자신의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짐 보따리 짊어진 채 주인이 부리는 데로 순종만 하던 말(馬)에게 한 숨 돌려 땀도 식히고 뻗뻗해진 다리 근육도 풀어 줄 꿀맛 같은 휴식 없이는 저들도 결코 버틸 재간은 없다.
말(馬)이, 또는 당나귀, 노새가 힘든 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이잖겠는가, 그보다도 함께 부리는 마부들이 먼저 죽겠다는 것 아닌가, 너무 힘이 들어서.그러기에 힘겨워 하는 동물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도 당연히 쉬어야 한다.
어찌 됐든 부리려면, 주인 대접 바로 받으려면, 바짝 귀 기울여 '힝힝', '씩씩'거리는 거친 호흡 소리를 읽으라는 의미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차마고도를 질주하는 현대판 말(馬)들을 보자. 소위 배달의 천국답게 소비자들은 전화 한 통, 인터넷, 모바일 주문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편리함의 끝판 왕 세월을 누린다. 대기하던 운송 수단들이 즉각 대령이다.
스쿠터나 오토바이로 도로 위를 무섭게(?) 달리는 배달 서비스 종사자들...... 그들에게만 온통 초점이 맞춰져 가타부타 얼마나 많은 뉴스거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도로 위 무법자, 교통 법규는 저들에겐 무용지물, 아무튼 자동차 운전자가 특히 가장 무서워해야 할 대상 등등......
저들이라고 왜 할 말과 변호하고 싶은 사연들이 없겠는가?
소비자든, 그들의 편리함을 채워주는 배달 서비스 노동자든 서로가 상생하는 멋진 관계 형성은 요원할까?
그 옛날 차마고도를 누비던 말(馬)들처럼 저들의 애마(?) 오토바이를 보자. 배달 노동자들에게 말없이 봉사하며 하라는 데로 명령 한 번 어긴 적 없는 데 얼마나 보살핌 받으며 주인의 관심과 사랑을 누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도 아프다며 끙끙 알며 신음하고 있는 데 말이다.
꼭 필요한 쉼은 때 맞춰 제공하고 있는지. 다리 근력이 생명인 말(馬)처럼 바퀴의 흔들거림 알아차리고는 있을까? 언제부터 빠졌는지 까맣게 부려 먹고만 있는 뒷바퀴의 바람 빠짐, 적당한 간격 두고 뒤집어쓴 먼지는 씻겨주고는 있는지......
오늘도 내 곁은 곡예하듯 스쳐 지나가는 저들의 애마 오토바이를 힐끗 거리며 오지랖 넓게 걱정 아닌 걱정, 꼰대 짓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배달의 당당한(?) 기수들, 서비스맨들의 휴식 뿐 아니라 부리는 애마, 오토바이나 스쿠터의 쉼도 챙길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만 가이 배달의 천국에서 주인 면허증을 소지한 자들 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