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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끔히 열린 틈새

그냥 '풀'

by 박점복

'사각사각' 기척,

저리 반가울까


이쪽은 녹색으로,

저리로는 내음으로

기웃, 갸웃 난리도 아니고.


겨우 한 세월 비척이 빠끔히 열린

놓칠 새라 기어이 차곡차곡 인사를 한다.


얼마 전 삐죽이 더니만

경쟁하듯 하늘 만 연녹색 잎새들,

턱 밑까지 차오른

단내 나는 숨소리 싫지 않단다.


오래전 할아버지 빼닮았다 혼잣말이고

애달파한다, 러 흘렀음을.


추억 담아

차곡차곡 그리워하라며,


아버지의 옛 당부 빼먹지 말고

팔뚝을 보드랍게 간질이며,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란다.


이름도 그냥 '풀'이라고만.


새 살림 난 키 큰 언니들

울창하게 차려입은

건너편 들에게

서운찮게 수분(授粉)하.


소상하게 풀어가며 판화처럼 새긴 덕에

하 세월 흘렀어도

인생살이 토막들을 끊임없이 꿰메낸다.


할머니와 함께

딸들이 불어

변함없이 맞을 칠, 팔십 그때까지

간질이던 련함 결코 놓지 말란다.


아픈 상처 보듬으며

아름답게 아끼면서.


말끔히 파랑으로 치장한 하늘 우산에

울울창창 짙어 가는 지금을 간직하리라.


숲 속의 녹음방초

그리고 내가


아직은 멀지만, 아득한 그곳에서

사랑스러운 미래의 미동(微動)

쫑긋 귀 새워, 만나는 당부와 불어.



오랫동안 동네 나지막한 산을 오르며 내렸다. 좁게 난 산길 걸으며 만났던 풀들이 당부하며 건넨 속삭임이 여전히 쟁쟁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팔뚝, 나의 이마, 사랑하는 아이들의 종아리를 간질이던 풀들의 이야기가 사립문 틈새를 정겹게 비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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