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dying

임종체험

by 박점복


(棺) 밖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음은 체험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확고한 믿음에 의심의 여지 역시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랬기에 순서에 맞춰 뚜벅뚜벅 내가 들어갈 좁은 공간, 내 육체 하나 겨우 건사할 크기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거다.

시도해 볼 게 따로 있지 별걸 다. 언감생심 무서워 벌 떨 수밖에 없는 죽음의 과정, 그 갑갑한 곳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떻게 들어갈 수 있겠는가. 들어가면 못 나올 곳 이었다면......

2001년 무렵 근무하던 학교 아이들의 체험학습 겸 수학여행을 인솔하며 만났던 충북 음성 꽃동네 마을에서의 생애 처음이자 결코 또 경험하기 쉽지 않은, 아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소중하면서도 엄숙한 체험이라니.

'무섭긴 뭐가 무섭다고!' 학생들을 달래며 큰 소리로 떵떵거리긴 했지만..... 체험이었기에 가능했을 뿐, 잔뜩 겁먹은 건 아이들이나 나나 뭐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다독이며 내 차례를 맞은 것이다.

관 속에 누워 두려움과 갑갑함으로 떨고 있는 내 몸 위를 무겁게 탕탕 내리치며 압박해 오던, 뚜껑을 고정시키겠다며 못을 박던 그 소리, 세상 그 어떤 소리가 이에 비할 수 있을 만큼 두렵움과 무서움에 떨게 할 수 있을까?

찰나처럼 스던 지난 내 삶이 어땠는지 도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너무도 빠르게 휙하니 지나가니 돌아볼 여유 어쩌고는 사치일 뿐이었다.

그렇게 혼미한 상태로 정신없이 다시 나바깥세상, 어안이 벙벙했다. '후유' 내뱉은 안도의 큰 심호흡이라니. 겨우 되찾은 정신에 이후 삶은 관 속에 묻고 나온 지난 삶과는 얼마나,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내야 할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관 밖의 새 삶 개과천선하며 살 수 있을는지. 소중하게 순간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하는데..... 머릿 속은 온통 하얘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순간 무기력이 엄습해 왔다.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히스기야 왕, 그처럼 만약 내게도 덤으로, 원래는 죽게 되었었는 데, 20여 년쯤을 더 살라며 주어진다면...... 임종 체험까지 마친 나는 어때야 할까?

병들어 죽게 되자 그렇게도 간절한, 애끊는 고통의 기도를 신께 드린 것이다. 하여 생명이 꽤나 연장는 복(?)을 받았건만, 그 삶의 모양새는 아니 신께 대한 배신의 정도는 '저래도 되는 거야?'수준 이었으니.

'나는 최소한 그렇게는 하지 않을 테다' 그 왕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임종 체험 이후 과연 그 왕에게 비난의 손가락질을 할 만큼 바뀐 삶을 꾸리고 있는가 말이다.

물에 빠져 다 죽어가는 거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란다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안면몰수, 상전벽해 변해도 웬만큼 변해야, 물론 이해력 수준이 낮긴 하지만, 이해라도 해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새롭게 너스처럼 받은, 관 속 체험 이후의 값지고 너무도 귀한 삶을 이전처럼 후회막급한 삶으로 떨어뜨려서야. 그런데 '어라! 어째 방향은 자꾸 마음먹은 데로가 아니다' '참! 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게 속 상하고 안타깝지만, 이게 '우리 인생의 한계?' 이 생각을 도무지 깔끔하게 떨쳐내질 못한 채 오늘도 또 어영부영 보내고 있진 않은지......


역설 : 잘 사는 것 = 잘 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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