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수학여행을 간다는 데 어떤 부모가, 사정과 형편을 봐서야 도무지 불가하지만, 돈 없어 안 되겠노라 밝히며 자식 가슴에 평생 씻지 못할 치유 불가의 생채기를 낼 수 있더란 말인가?
이처럼 꼭 보내 줘야 할, 그래야만 안 그래도 축 쳐져 있는 자식 어깨 조금이라도 세워주질 않을까. 부모로서 무거운(?) 책임감에 온갖 방법 다 짜 내 보지만 도무지 돌파구가 없던 현실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셨을까?
빚이라도 내서 보내고 싶어도 모두가 변변찮던 세월 선뜻 나서 빌려줄 이웃도 없었으니. 생각하면 지금도 먹먹한 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학창 시절 가난으로 갈 수 없었던 수학여행을 교사로 발령받은 초임지 학교에서 부산으로 아이들과 함께 인솔교사 자격으로 처음 참여하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안 들키려 무진 애를 쓰긴 했어도 혹시 눈치 빠른 녀석들은 알아차렸을 수도. "얘들아! 어째 선생님이 너희보다 더 들뜬 것 같지. 처음으로 수학여행이란 걸 떠나거든......"
여행이라기보다 교육과 체험에 초점이 맞춰진, 학생 시절 못 가본, 수학여행을 인솔 책임을 진 교사로서 떠나게 되다니. 실은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해 내긴 정말 어려웠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마음 한 구석이 얼마나 헛헛하던지. 수학(修學)을 위해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으니, 적어도 내겐.
너희보다 더 들떠 교사인지 학생인지, 본분은 잊지 말아야 했을 텐데 말이다. 표 나진 않았지, 그래도?
이렇게 학생으로선 못 가봤던 수학여행을 교사되어 몇 번을 사랑하는 학생들과 함께 떠나면서 혹시 들뜰 데로 업(up)된 너희 기분 이해도 못해주고 교사의 위압(?)적 태도로 규칙이라는 미명 하에 옥죄지나 않았는지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지금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되는구나.
흔히들 수학여행 때 벌어진다는, 다른 학교 수학여행 팀 특히 여학교 팀과의 숙소 사이를 오가며 기묘한 방식으로 쪽지 연애편지를 전달하려는 너희들, 막아보겠다는 교사들의 삼엄함이 지금 생각하면 절로 웃음 지어지곤 한다. 스마트폰 카톡이 너무 웃겨 죽겠단다.
또 남학교 사이에선 자신들의 학교가 훨씬 세다며 월등함을 자랑하고파 피차간 일촉즉발 직전까지 갔던 일들 기억하지? 그 시절 수학여행 모습이었어. 마치 '동물의 왕국' 주도권 싸움하듯.
취침시간 꼭 지켜 자라는 데 왜 그땐 밤을 꼴딱 새워도 다음 날이면 쌩쌩하던지..... 또 철저하게 소지품 검사, 지금이야 자칫 잘못하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니 신중해야겠지만, 그 때야 어디 그랬니?
교묘하게 숨겼던 술과 담배, 역시 적발해 보겠다는 교사와 너희들 간의 신경전도 볼만 했어. 그때 못 찾아낸 게 더 많았을 테니 스릴 많이 느꼈지? 생각하면 혈기 왕성하던 한 때 지금도 아른아른거릴 거야.
그랬던 너희들 지금은 맡은 자리에서 성실함 뿜 뿜 거리며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 혹시라도 '수학여행' 얘기 나오면 그 시절 추억에 푹 빠져들게 되지 않던? 오히려 인솔했던 내가 주책없이 너희보다 그 시절 더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아 살짝 부끄럽기까지 하다.
학창 시절 누리지 못한 수학여행을 교사되어 비로소 체험해 본 어쭙잖은 소회란다. 넓은 이해 바래.
게다가 요즘 아이들에겐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가는 불상사(?)는 옛이야기가 되었지. 한데 그놈의 원치 않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가는 안타까움이라니. 세상사 참 맘대로 되질 않지?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듯하다. "우리 땐 수학여행은 딴 나라 얘기였어!" 추억하며 안타까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