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머리에 씌울 관을 만들던 복두쟁이, 그가 난생처음 본 광경은 분명 당나귀 귀만큼이나 희한하게 큰 임금의 귀였다. 몇 날 며칠을 숨기고 감춰 봐도 입이 웬만큼 근질거려야 그나마 참으리라 애라도 써 볼 텐데. 비밀 누설 시 목숨까지 달린 일이기도 했고 후들후들 얼마나 떨렸을까.
복두쟁이: 과거에 급제하여 복두(幞頭)를 쓴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아무도, 누구도 들을 것 같지 않은 너른 들판, 대(竹) 밭에서 원 없이 비밀을 털어내는 것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음을 알아 맘껏 외쳤다잖은가? 이해가 될 듯도 하고 아닌 것도 같으니, 참!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얼마나 시원하고 속이 뻥 뚫렸을까. 한편 무섭기도 했을 테고. 이것과 비교해도 전혀 2등이 될 수 없다. 못지않은 중대사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근사하게 장식할 딸의 결혼 소식이 말이다. 브런치에서라도 목청껏 외치련다.
세계 최초, 최고이자 유일 무이하니 당연히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큰 딸 결혼식이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세기에 딱 한 번 일어날 사건이라나 뭐라나. 상당히 오버(over) 하며 푼수까지 여지없이 떨어댄다. 핀잔 들어도 아빠인데 어쩌랴.
(이 글 접하시며 행여 유난깨나 떤다며 속이 불편하실 분들께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한다. 죄송합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 어느 재벌가 딸과소위로열패밀리라는 대통령 아들과의 혼사 등을 '세기(?)의 결혼'이라며 시끌 법석 떠들어 댔잖는가.
그것은 그것대로 큼지막한 해프닝일 테다, 당사자들에겐.
내 딸의 결혼 또한 딸과 사위, 적어도 우리 가족과 사돈댁 모두에겐 가족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장식할 2023년 2월 중대사이다. 이 혼인을 기어이 높고 높은 반열에 당당히 올려놓는다. 쑥스러움은 오로지 내 몫이지만.
세상 모든 다른 부모들도 같은 심정이리라. 딱히 표현을 드러내 놓고 하지 않으실 뿐...... 누군가 자꾸 수군거리며 목덜미를 잡아당긴다. 뒤통수가 화끈화끈거린다.
'뭘 그리 유난을 떠냐고. 남들도 어지간하면 다 하는 일 가지고'
수십 억 명에 육박하는 많고 많은 세상 사람들 중 우리 딸, 그리고 사위는 달랑 1/n에 그칠 존재가 아니리라. 엄마 아빠들에게 자식이란 그 어떤 좋은 형용사를 앞에 붙여도 모자랄 판이니. 티 좀 그만 내라며 주변에서 비웃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 손 두 발 다 들며, "정말 못 말리겠군요. 당신의 착각" 이란다.
코 앞으로 다가왔다. 마음은 이유 없이 분주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며 카운트 다운까지 시작했더니 감정이 묘해지면서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뭔가가 친한 척 달라붙어서는 좀처럼 떨어지려 하질 않는다.
아니 이건 독특하고 희한한 나 혼자의 오해와 욕심에서 슬슬 삐져나오는, 그렇긴 해도 대부분 부모들 또한 갖는 보편적 생각이지 않을까 견강부회 합리화를 시켜 본다. 속이 편치 않아도 항거하듯 위로하면서.
그렇게 세상 하나뿐인 큰 딸과 사위가 만나 전례가 없는 결혼을 하는 데 쉽게 떨어지려 하지 않는 고약한 생각이 잠깐잠깐 들르며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이겨낼 자신은 넉넉하지만 구닥다리 티는 정말 끈질기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 빼앗기는 건 아닌가?' 사위 쪽 가족도 인지상정 굉장히 서운해 하긴 마찬가지일 터. '이렇게 멋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귀한 아들 며느리에게 통째로 넘기는 건 아니겠지?'
저들이 펼쳐 나갈 넓디넓은 바다 같은 미래, 푸른 창공처럼 높은 세상은 독특한 저들만의 방식으로 펼쳐 낼 터이다. 파도와 맞서며 기진맥진 노 저어야 할 때도 물론 있다. 힘차게 날갯짓하며 솟구칠 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 또한 왜 없겠는가?
하지만 누구도 느껴볼 수 없는, 만나 보지 못한 삶의 쾌감, 기쁨, 환희 역시 기다리고 있으니 한 번 밖에 없는 귀하디 귀한 기회 후회 없이 활용하길 간절히 기원해마지 않는다.
그런 딸과 사위에게 하늘이 허락한 아비와 어미의 축복권 맘껏 쏟아부으며 손을 머리에 얹고 다음과 같이 복을 빌어준다
사랑하는 딸아!, 사위야!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하는 모든 일(범사)이 잘 되고 강건하기를 아빠가 엄마가 기원한다!
축복과 더불어 당부의 말 또한 늘 마음판에 잘 새겼으면 하는 바람 굉장히 크고 말고이다.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성(城)을 밤낮으로 지키는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이며,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 역시 시지프스가 죽을힘 다해 끌어올려 보지만 결국 다시 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헛되단다
너희 역량 최선을 다해 발휘해야 하지만 동시에 겸손하게 하늘 뜻도 받들 줄 아는 지혜로운 삶 꼭 실천하길 바라마. 세기의 결혼 맘껏 축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