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 약방 감초처럼 그놈의 보물찾기 꼬박꼬박 빠진 적 한 번 없었으면 뭘 하나. 행운권 추첨 피날레라며 '혹시나'를 '역시나'로 짓밟던 동창회는 또 어땠고. 행운은 왜 그렇게도 날 싫어하지?
그런데 살다 보니 어쭈 이런 날도 있다, 억세게 재수 없던 내게도 엄청난 하늘의 어엿비 여김이 손을 내밀었다. 혹시 내 간절함에 감동이라도......
언감생심 꿈조차 못 꾸고는 먹먹한 채 맘만 조렸는데. 대책 없이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로 날 데려다줄 타임머신이 준비됐단다. 품위 있는 초대에 일등석 vip자리까지. 몇 번이나 꼬집어 봐도 생시(生時)다.
쾌적하게 미끄러지듯 한참을 달렸다. 초음속의 빠르기로. 갈림길에 접어들자 눈짓으로 내 의사를 묻는다. 방향을 선택하라며. '좌회전?' 할까요, 아니면.......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이 이 쪽이라면, 저 쪽 화살표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고민 중인 내 모습이 타임머신 룸미러(room mirror)에 적나라하게 잡힌다.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if)'이 가당치 않은 게 시간이다.
그런데 되돌아갈 수 있는 행운을 선물로 받으라니.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물론 다시없을, 넝쿨째 굴러들어 온 이 복(福)을 어떻게 현명하게 후회 없이 사용할 수 있을지.
(어떤 매거진의 공모글 모집을 발견하고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또 무엇을 원하는지......]
창졸지간 황망하게 하늘나라로 아버지를 보낸 아픔과 아련함을 치유받고, 그토록 아버지를 짓눌렀던 버거움도 벗겨드려 창공을 훨훨 날 수 있게 할 수 있으려나. 속수무책이던 40년 전 그 일을.
"먹는 것도 시원찮은 데 자꾸 배가 불러온다, 어째"
흘리시듯 슬쩍건넨 말씀 새겨듣지 못한 어리석음이라니. 가난이 껌딱지처럼 붙어살던 세월인 데다가 나이까지 어렸으니 판단인들 쉬웠으랴, 사리분간 제대로 했을 리 만무였다. 어쩔 줄 몰라 당황했던 그때 환경과 여건이 너무 아프다. 달라져 버린 지금과 자꾸 겹쳐지기 때문일 테다.
깡 마른 체구, 얼굴까지 까만, 전형적인 간(liver) 관련 질환을 앓고 계셨는데 심각한 줄도 모르고 그냥저냥 넘긴 무지를 용서받길 소망해 본다. 돌아가신다는 것과는 눈곱만큼도 엮고 싶지 않아, 딴 세상 얘기인양 일부러 외면까지.
한데 불안과 염려는 왜 그렇게도 예상을 빗나갈 줄 모르던지. 방학 때 다시 찾은 아버지의 건강은 돈도 무용지물, 치료할 여건도 환경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점점 위중해짐을 지켜만 볼 뿐 방법은 없었다. 무지와 가난, 도리 없는 무능력이 한없이 원망스러운 까닭이다.
최첨단 의료 장비, 최고 의술, 타임머신에 함께 실어 건강하게 새 삶 펼치도록 아버지께 치료의 기회를 열어드릴 테다. 얼마든지 이식도, 완치도 충분히 가능할 테니 어찌 마음 한편이 아리지 않겠는가?
체력이 감당 못 할 고된 막노동 힘에 부쳐하시면서도 어린 자식들, 고생뿐이던 아내에게 행여 짐 될세라 가장(家長)의 무게 편찮은 몸으로 혼자 감당하셨을 아버지를 가볍게 해드려야 한다.
검사 결과야 당연히 일치할 터, 제 간을 감사한 맘으로 아낌없이 드릴 테다. 값으로 계산이 불가한 모든 것 이미 제게 주신 아버지셨잖은가?
아름답고 늠름하게 커가는 자손들을 감사하게 지켜보며 하늘이 부여한 삶 만끽하시길 그리고 또 그 모습에 행복해할 가족 모두의 환한 미소가 최고로 아름다운 선물되길 기대하며.
어리광도 맘껏 부려볼 테다. 아들의 재롱에 그날의 고됨 눈 녹듯 녹이시며 좋아하실 아버지의 편안한 웃음 마주하고 싶다. 시간을 되돌려 아버지를 만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