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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you!'

'먼저 들어가시죠'

by 박점복

소위 '은퇴'라는 희한한 녀석을 만난다. 세월 흐르면 어차피(?), 아니 선택의 여지조차 없이 넘겨줘야 할 자리였다, 원래.


남들이 짜준 스케줄 '맘에 드네, 안 드네' 입이 댓 발이나 나와서는 구시렁 꽤나 거린 게 맘에 걸리긴 한다. 막상 스스로 계획 세워 맘대로 해보라는 데, 시큰둥하면서. 괜히 자신도 없고.


'시원함' 거저 선물로 주는 백화점 배회도 속칭 백수가 된 시간표 한 칸 당당히 차지하는 소일거리(?)다. 출입문 열고 막 들어선다. 몇 사람이 계속 꼬리를 물고 뒤따랐고.


하필이면 그때, 학창 시절 배웠던 '영어 표현', 'After you'가 뜬금없이 떠올랐는지. 졸지에 수준(?) 좀 되는 매너맨으로 등극했다. 잠시 문 한번 잡아주는 행동 하나로.


당신 뒤(after)에 내가 들어갈게요. 앞(before)이 아니고.


독창적인 데다가 과학적 체계까지 흠결 하나 없는, 세계가 인정한 우리 글이 버젓이 행세 중인 한국 땅인데 영어 표현을 잘난 척 썼을 리가.


하지만 한 번 파고든 편견, 생명력 참 길기도 하다. 영어권 나라들은 남을 배려하는 수준도 높다지....... 철석같이 믿으며 자기 비하까지


(selfish)가 몹시 세다는 곳, '나'라는 영어 단어 'I'는 문장 속 위치가 어디든 늘 대문자로만 쓴단다. 논리 따른다면 오히려 당신(You) 뒤 보다, 내(I) 앞이 맞을 듯도 하고. 알쏭달쏭하다, 참!


어찌 됐든 복잡 다양하게 격식 갖춘 우리 한글의 예의 등급(等級)에 감히 견주겠다고 덤벼들 순 없을 테다.


'먼저 들어가시죠!' 우리 식 배려 멋지게 작동시키며 문을 잡아 준다.



대문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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