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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지마다 문화제 하나씩......

교장의 흔적

by 박점복


발(足)도 없는 데 말(言)은 천리를 간단다. 이 또한 재주이지 않은가? 그 교장님은 이렇듯 풍문을 달고 다니시는 분이었다. 소위 경기도의 3대 유명(?) 교장 명단에 포함되었으니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했다.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며 많은 학생들과 함께 근무했던 교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런 유명세라면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초임지에서 첫 교장님으로 모셨던 그분은 이런 부류와는 상관이 거의 없는, 오히려 그 반대 편에서 널리 명성(?)이 자자했던 분 아니었던가.



당시 학교장의 위세는 요즘의 그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고 말고였으니 '짐은 곧 국가다'라고 했던 중세 시대 어떤 폭군과 비교해도 거의 틀린 말은 아니던 세월이었다.


학교장의 말은 곧 법과 같은 구속력을 지녔으니 누가 감히 '그건 이렇게 계획을 수정하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라며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게 쉬운 일이었을까?


그 옛날 부임했던 고을 원님이 임금의 부르심을 받아 그곳을 떠날 즈음이면 세워 주었다던 공덕비가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듯 이 분은 나름 근무하는 곳마다 흔적을 남기고 싶으셨음이 분명하다.


하여 이 교장님은 부임지마다 지역명을 딴 소위 '○○문화제'를 업적으로 남기길 원했다. 실상 그 지역 고유의 특색을 지닌 문화가 없진 않겠지만, 다분히 인위적 요소가 너무 많이 가미되었음을 누구라도 알고 말고 였다.



경복궁타령, 농악놀이, 강강술래를 비롯한 그 지역과는 무관 했던 원래 우리 고유의 전통놀이를 문화제로 포함시켰으니 따라야 했던 교사들과 학생들, 그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그리 달갑기만 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 속에 계획 중인 '○○문화제' 전통놀이 종목을 일단 교사들에게 배당한 후 기한 내에 완성시키라고 하면 본인의 몫은 끝인 것이다.


그렇게 초임 교사인 내게 배당된 전통놀이는 '탈춤'이었다. 탈춤의 'ㅌ'조차 몰랐던 내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명령이었고 이유와 변명은 통할 리 없었으니 수단 방법의 동원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탈춤 동아리를 운영하는 대학생을 어렵사리 찾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배워가며 준비하던 그때가 복잡한 생각들로 뒤엉킨 채 여전히 기억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그렇다면 그 교장님처럼 대단한 권력은 없었지만 행여라도 그때 우리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교사의 위세를 행세한 건 없었는지. 교장 자신의 공적을 위해 명령만 내리면 끝인 양했던, 그 잘난 위세처럼 아이들에게 알량한 권위(?) 내세우며 내리누른 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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