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차, 1부_전쟁의 시작과 끝을 보기 위한 발걸음

가족과 떠난 독일 렌터카 자유여행

by 혼뽐아재

2025년 6월 30일

독일 렌터카 자유여행 8일차, 1부_세계 2차 대전의 시작과 끝을 보기 위한 발걸음


오늘은 뉘른베르크 시내에 "나치 전당 대회"가 열렸던 "나치 전당 대회장(Reichsparteitagsgelände)"을 탐방하고 뉘른베르크 시내로 와서 "뉘른베르크성(Kaiserburg Nürnberg)"까지 올라 갔다온 다음,

세계 2차 대전후 "국제 군사 재판소(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IMT)"였던 "뉘른베르크 정의궁(Nürnberg Justizpalast)"를 방문하고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약 3시간 20분정도, 300km 정도를 주행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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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이용했습니다. "Hampton by Hilton Nuremberg City Centre" 호텔은 예약시 무조건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위치도 좋고 방값도 합리적이고 조식 메뉴도 다양해서 추천할 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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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을 든든히 먹은 후 Check-out을 한 후 저희는 먼저 "나치 전당 대회"가 열렸던 "체펠린 비행장(Zeppelinfeld)"으로 향했습니다.

앞에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전쟁을 통해 역사를 투영해 보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 독일 방문이 일명 20세기 초 "나치(Nazi)"의 발생으로 부터 패망하는 세계 2차 대전에 현장을 볼 수있는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나치(Nazi)"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 존재했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에 대한 멸칭입니다.

정식 명칭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으로 약칭 'NSDAP'입니다. 국가(또는 민족), 사회주의, 노동자 3글자가 합쳐진 명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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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독일 대통령이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가 사망한 이후 당시 총리였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대통령까지 겸임하면서 "퓌러(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로 부상하자 본격적으로 독일 전체에 모습을 드러냈다고합니다.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체코슬로바키아도 강제로 집어삼켰으며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과 3국 동맹을 맺고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후,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습니다.


한때 영국과 소련을 제외한 유럽 전역을 장악하였으나 연합군의 반격으로 패전의 위기에 몰리고, 1945년 5월 아돌프 히틀러의 자살과 임시 대통령 "카를 되니츠(Karl Dönitz)"의 항복 선언으로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나치는 전당대회장으로 1923년 이후 독일국 바이에른의 뉘른베르크에서 매년 행사를 열었다고 합니다.

1933년 히틀러가 수상 자리에 오른 이후로는 한층 더 거대하게 규모가 성장해서 나치즘의 거대한 선전의 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 곳에서 행해진 각종 선전 행위와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수뇌부의 연설 및 대중들의 맹목적인 열광은 오늘날까지도 파시즘 연구대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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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SNS에 올라온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당시에 그런 규모의 행사와 선동을 기획하고 진행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치밀함을 보여줍니다.


당시 선동의 달인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각종 행진과 상징들이 난무하고, 대형 매스게임과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열렬한 성원을 보내는 대규모 군중들의 한편의 거대한 쇼를 1927년부터 촬영하여 홍보 영상을 만들었으며 아예 1933년 자신들이 집권한 이후에는 영화 감독들을 초빙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촬영하여 만든 1933년과 1935년 두 차례의 전당대회 홍보 영화라고 합니다.


1933년에 촬영한 작품의 이름은 신념의 승리(Der Sieg des Glaubens)이며, 1935년 작품의 이름은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입니다. 이 두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선전 영화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최초의 전당대회는 뮌헨에서 열렸지만 1923년 11월 맥주홀 폭동(Hitlerputsch or Bierkeller-Putsch)으로 나치당이 해산이 되어 활동을 못하다가 나치당의 재건을 위해 뉘른베르크를 선택해서 매년 진행했다고 합니다.

나치당이 뉘른베르크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는데


1.나치 독일 시기 바이에른은 독일의 국토 중앙부에 있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편했다는 점

2.뉘른베르크를 비롯한 바이에른 일대는 신성 로마 제국 시기 선제후(영주)들의 모임, 속칭 제국의회(Diet)가 열리던 개최지중에 한 곳이어서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제3제국을 자처하던 나치 독일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누릴 수가 있다는 점

3.당시 이지역은 골수 나치당원인 "율리우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가 주지사로 재임중이었기 때문에 각종 공권력 지원 및 나치에 우호적인 대중들을 동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점.

4.뉘른베르크 일대에는 대규모의 도로들이 잘 정비되어서 각종 퍼레이드를 진행하기가 쉬웠다는 점.


등으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전당대회는 1938년 세계 2차 대전의 시작으로 중단됩니다.


나치 전당대회장은 건축가이며 나치 독일의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가 "체펠린 비행장(Zeppelinfeld)"을 중심으로 전문 전당대회장으로 설계하고 건설을 진행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나치가 패망하면서 미완성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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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zi_party_rally_grounds_(1938)_그랜드스탠드가 있는 제플린 필드.jpg

전쟁후 일부 건물은 나치의 만행을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체펠린 비행장은 공터로 방치하다가 카레이싱파크로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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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 이렇게 나치 최대의 축제장이었던 뉘른베르크는 나치가 패망한 이후, 나치 전범을 심판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현재 체펠린 그랜드스탠드와 체펠린 필드를 새로운 반성을 통한 모든 문화적 표현을 위한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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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펠린 비행장(Zeppelinfeld)"을 본 후 로마의 상징적인 건축물을 본 떠 만들려고 했던 나치 전당 대회장의 "의회장(Kongresshalle)"건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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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제3제국을 자처하던 나치 독일의 오마주였던 이 의회장의 초석은 1935년에 놓였지만, 공사는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캔틸레버(Cantilever, 외팔보) 지붕이 특징인 이 디자인은 뉘른베르크 건축가 "루트비히 루프(Ludwig Ruff)"와 "프란츠 루프(Franz Ruff)"가 설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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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크기는 U자형으로 바깥쪽은 240×200m, 안쪽은 175×155m 이라고 합니다.

루트비히 루프와 프란츠 루프는 U자형을 통해, 기원전 500년경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해 지어진 로마 의 고대 "마르켈루스 극장(Marcellustheater)"을 언급했다고 합니다.


이 홀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나치당의 회의장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약 70m로 계획된 높이 중 39m만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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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방문 당시 전 건축물을 보수중이어서 전체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ㅠㅠ

입장료는 '성인기준 EUR 7.5' 입니다.

방대하면서 광적인 이 건물에서 그 때를 반성하고 또 다시 같은 짓을 벌이지 말자는 행사나 전시회가 많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나라도 배웠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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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현재 독일에서는 나치를 찬양하거나 나치의 상징물을 사용하는 자들을 형법에 따라 처벌하며, 국민들도 나치 찬양이나 상징물 사용을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독일 형법으로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나치의 폭압을 겪은 다른 유럽 국가나 아예 민족이 사라질 뻔했던 이스라엘에서도 나치와 나치즘에 대해 금기시하고 있거나 아예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합니다.


씁슬함을 뒤로 하고 뉘른베르크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주차를 하고 먼저 도착한 곳은 고딕양식의 "세인트 로렌츠 성당(St. Lorenz)"으로 건설은 1250년경에 시작되었고, 후기 고딕 양식의 홀 합창대는 1477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지붕과 아치형 천장이 폭격으로 심하게 손상되어 복원되었습니다. 이 성당에서 관심있게 볼 것은 "아담 크라프트(Adam Kraft)"가 만든 유명한 "성찬 실(Sakramentshau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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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에는 오르간이 3개가 있다고 합니다. 첫 오르간은 1862년 슈테판 오르간으로 세계 2차 대전중에 파괴되어 2002년 클라이스 오르겔(Klais Orgelbau)에서 복원 마무리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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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관람을 끝나고 점심을 하기위해 시내에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메뉴는 이 지역에서 가성비가 좋다는 1968년에 오픈한 'Block House' 스테이크 식당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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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b-eye Mastercut', 'Sirloin Steak' 그리고 월요일 메뉴인 'Rdergulasch "Ungarische Art"'를 주문하고 음료는 레몬 탄산수와 맥주를 시켰습니다.

뉘른베르크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이 식당은 분위기와 맛에 높은 점수를 줍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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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값은 총 'EUR 80.4'를 지불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시내구경을 하면서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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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도착한 곳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모성당(Frauenkirche Nürnberg)"입니다.

이 성당은 1352년부터 1362년까지 "파를러(Parler)"시대에 "카를 황제(Karl IV.)"의 지시로 건축되었습니다. 1360년경 건축 당시부터 많은 예술성있는 조각품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세계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많이 손상되었다고 합니다.

폭격으로 본당의 벽과 정면만 남았으나 1946년 부터 현재까지 계속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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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엔키르헤에 오르간이 존재한 것은 1442년부터 라고 합니다.

현재의 오르간은 1957년 오르간 제작 회사인 "요하네스 클라이스(Johannes Klais)(Bonn)"에서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 오르간은 처음에는 통로 끝 벽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1980년대 중반에 이 악기는 재건축 및 확장되어 지금은 교회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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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방문한 곳은 "성 제발트 교회(Sebalduskirche)"입니다.건물 건설은 122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1255년에 교구 교회 지위를 얻었고 1273~7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원래는 두 개의 합창대가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 으로 지어졌습니다.


1309~1345년 높은 첨탑을 세우고, 1358~1379년에 후기 고딕 양식의 홀 후진(Apse)을 지어다고 합니다. 두 개의 탑은 15세기에 추가되고, 17세기 중반에 갤러리가 추가되었고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리모델링되었다고 합니다.

이 교회 또한 세계 2차 대전 중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나중에 복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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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14세기에 오르간이 한 대, 15세기에 또 한 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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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오르간은 1440년에서 1441년 사이에 하인리히 "트랙스도르프(Heinrich Traxdorf)"가 제작했는데, 그는 뉘른베르크 "성모성당(Frauenkirche)"를 위해 두 대의 작은 오르간도 제작했습니다.

트랙스도르프 오르간은 1691년에 개조되었으나 오르간 케이스는 1945년 1월 2일 연합군 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

1975년에는 쾰른의 피터가 제작한 새로운 4매뉴얼, 122랭크, 84스톱 오르간이 설치되었습니다.


방문 당시 오르간에서 멋진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연주자가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르간 테스팅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멋진 소리에 잠시 영상으로 담아봤습니다.


이제 뉘른베르크를 조망하기 위하여 "뉘른베르크성(Kaiserburg Nürnberger)"으로 올라갔습니다.

독일 바이에른 주 뉘른베르크의 역사적 중심지를 지배하는 사암 능선에 있는 중세 성이자 요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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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은 성벽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중세 요새 중 하나라고 합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권력과 중요성, 그리고 뉘른베르크 제국 도시의 탁월한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뉘른베르크 성은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국 성(Reichsburg)", "부르그라비아테(Burggrafenburg)", 제국 도시가 동쪽에 세운 건물(Reichsstädtische Bauten)입니다.

최초의 요새 건물은 100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나치시대, 1936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나 몇 년 후, 세계 2차 대전과 1944, 1945년의 공습으로 성의 상당 부분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고 복원하는 데 약 3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뉘른베르크성에서 찍은 시내 사진과 세계 2차 대전 당시 폭격맞은 뉘른베르크 사진을 같이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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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날씨에 성에서 내려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국제 군사 재판소(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IMT)"였던 "뉘른베르크 정의궁(Nürnberg Justizpalast)"입니다.


이번 글은 길어져 여기까지 정리하고 다음 글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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