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김해박물관
부산 사상에 가면 굉장히 많은 교통수단들이 있다. 기차, 시외버스, 지하철, 그리고 경전철이 있다. 그중 경전철을 타면 김해에 갈 수 있다. 부산과 김해를 오가는 경전철의 마지막 종점이 사상이다. 사상에서부터 김해 삼계동까지 오가는 열차인데, 김해공항과 김해 공단을 경유하기 때문에 공단으로 출퇴근하거나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용한다. 그런데 이 경전철은 김해의 가야유적지들도 경유한다. ‘봉황역 - 수로왕릉역 - 박물관역’ 등에서 내리면 김해의 가야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경전철을 타고 가면 금관가야 당일치기 답사가 가능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경전철을 타고 금관가야의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국립김해박물관을 다녀왔다(너무 안내멘트 같은 문장이지만, 부산김해 경전철을 타면 ‘국립김해박물관과 김수로왕릉 등 가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이라는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부산과 김해의 경계에는 다리가 있는데 거기에 ‘금옥문’이라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꼭 한 번 경전철을 타고 이 설명들을 들어보시길)
가까운 거리면 웬만해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다. 국립김해박물관까지는 멀지 않다고 생각해서 경전철을 타고 가겠다고 생각했다. 김해박물관까지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역시나 멀미 이슈로 경전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경전철 한 번이면 갈 수 있다는 생각이어서 그런지, 멀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이 생각은 여러 가지로 옳지(?) 않은 생각이다. 실제로는 김해박물관까지는 경전철 탑승 한 번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경전철을 타러 가기 위해선 지하철을 타고 사상역에서 환승해야 한다. 거기서 경전철을 환승해서 한 번에 간다 한들 경전철 탑승시간만 30분이 넘는다. 사상역까지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박물관 역에서 내려서 박물관까지 걸어가는 시간까지 모두 포함하면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물리적인 거리로는 전혀 가깝지 않은 곳이지만 계속해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왜 자꾸만 엎어지면 코 닿는
곳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일까. 왜 부산박물관 보다 가깝다는 느낌일까. 실제로는 부산박물관이 조금 더 가까운데 말이다. 이것이 마음의 거리라는 거겠지. 국립김해박물관까지 마음의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운전해서 가지 않아도 박물관에 금방 갈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부산김해경전철 사상역에 도착한 순간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김해박물관을 가겠다고 나선 날은 무척이나 더운 토요일이었다. 경전철은 지하철과 다르게 도로 위로 설치한 다리 철로 위로 달리기 때문에 태양이 그대로 열차 안으로 들어온다.
태양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올해처럼 너무 더운 날씨엔 아무리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부산김해경전철은 부산의 연장선상이라는 것도 간과했다. 부산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부산 시내 골목은 다 들어가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니까 돌아갈 수 있는 모든 길을 돌아가는 느낌이다. 부산의 모든 골목은 길이고, 길이 있으니 가야 하는 것처럼 누비고 다닌다. 그건 부산김해경전철도 마찬가지. 많이 돌아 돌아간다. 30분이면 왔을 거리를 1시간 넘게 돌아왔어 하하하하.. 그냥 운전해서 올 걸.. 하고 100번쯤 생각했을 때 박물관 역에 도착했다.
이제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나는 이미 땀에 절었다. 아.. 더워. 역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박물관에 도착하면 바로 시원한 아아부터 원샷해야지.
역에 내려서 그늘을 피하려고 강 쪽으로 건너서 박물관으로 갔다. 날씨 너무 덥네, 하며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보도블록에 무늬들이 박혀있다. 이런 물고기 두 마리가 그려진 보도블록이 인도 곳곳에 박혀있다.
이 문양은 ‘쌍어문’이라고 하는 것으로 가야 역사에 있어서 수로왕비인 허황옥과 관계있는 무늬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편을 보면 허황옥은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이다. 아유타국은 중인도에 있던 고대 왕국으로 해석해오고 있다(중국이나 태국이라는 견해도 있다). 인도에서는 이 쌍어문이 중요한 상징이라고 한다. 허황옥이 인도에서 왔을 것이라는 견해와 연결되어 이 쌍어문이 인도(人道) 곳곳에 장식되어 있다. ‘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에 진심인 김해구나’라고 생각하며 좀 걷다 보니 김해박물관에 도착했다.
국립김해박물관이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이유가 있다. 그건 아주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입학식 후 반나절만에 나는 ‘사학과’를 가겠다고 결정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마음이 3년 내내 변치 않았다. 대학교 원서접수 첫날, ‘사학과’에 입학원서를 접수시켰다. 접수번호 2번이었다(이때부터 오픈런에 목숨 거는 스타일이었고, 1번을 놓쳐서 여전히 분하고(!), 그 1번이 누군지 아직 모른다). 부산에 살고 있었던 이유로 막연히 ‘가야사’를 전공하리라 마음먹었었다. 내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라, 내가 살고 있는 땅의 과거도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교 원서 넣은 다음날 국립김해박물관을 찾았었다. 김해박물관은 당시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신생 박물관이었다. 요샛말로 쌔삥인 박물관. 건물자체도 아주 힙했다.
둥그런 건물 안에 사각이 들어가 있는 모습인데, 가까이서 보면 동그란 건물만 보인다.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 정말로 감탄하면서 봤다. 그간 봐왔던 공공기관의 건물들은 죄다 기다랗거나 높다란 직사각형인데, 이렇게 동그란 곡선으로 건물을 만들다니. 거기다 외관의 색상은 둥근 건물은 짙은 회색이고, 사각형의 건물은 불그스름하다. 둥근 건물은 철광석과 숯을 이미지화한 검은색 벽돌을 사용했고, 사각의 건물은 철판으로 외관을 꾸몄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변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커다랗게 서있는 국립김해박물관 간판도 철판으로 꾸며져 있는데, 갈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이렇게 건축한 이유는 ‘철의 왕국 가야’라는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오래전이라 생각이 안나기도 하지만, 어렴풋이 교과서에서 가야라는 나라를 설명하는 것 중 하나가 ‘철광석이 풍부해서 외국과 교역을 했다’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설명을 박물관 외관으로 구현한 것이겠지. 그런데 박물관의 전시를 보고 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지도.
너무 더우니까 일단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목이 너무 마르니 2층 커피숍으로 가서 시원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부터.
커피 한 잔 하고 나니 살 것 같다. 이번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워서 나돌아 다니기 너무 무섭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에 답사를 곧잘 다니곤 했는데, 올핸 답사 다니다간 고분 옆에서 껴묻거리처럼 발견될 것 같다. 박물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와 같은 생각들을 하며 잠깐 쉬었다. 커피잔 너머로 보이는 곳은 박물관 전시를 다 보면 나가는 길인데, 내가 김해박물관에서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이유가 있어라기 보다는 천천히 걸어서 박물관을 다시 둘러가는 게 좋기도 하고, 또 이 건물의 색상이 너무 마음에 들기도 해서이다. 예전엔 저 길 앞쪽 마당에 돌널무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잔디마당처럼 되어있다. 학부시절 박물관 마당에 있는 돌널무덤을 보며 ‘저기다 묻어버리고 가겠다’고 장난을 쳤었는데, 다른 박물관과 헷갈린 건가. 카페인 충전하고 열도 조금 식혔으니 박물관을 둘러볼까.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가야맞이방’이 맞아준다. 해상교역을 했던 가야의 모습을 디지털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준다. 2024년 1월에 김해박물관이 상설전시관을 새롭게 개관을 하면서 중점을 둔 것이 아마도 가야의 해상교역 부분을 강조하는 것 아닐까 짐작하게 하는 영상이다. 박물관 유물을 다 보고 나니 그 짐작이 확신에 가까워졌다. 첫 유물이 신석기시대의 배 모형이고, 맨 마지막 유물도 김해에서 발견된 금관가야 시대의 배 조각이다.
전시실 초입에 있는 배 모형은 신석기시대 유적지인 창녕 비봉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배다. 약 200년 정도 된 소나무의 속을 파내서 만든 통나무배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8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사용하던 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라고 한다. 이 배는 패총이 발견된 지역의 아주 밑바닥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유물이 발견된 지역이 농지였던 걸 생각하면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패총은 대개 바닷가 주변에서 발견이 되는데, 바닷가가 아닌 곳에서 패총이 발견되었다는 건 아주 오래전에는 이곳이 바다였거나 바다와 아주 가까웠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해안선이 변했다는 의미이고, 이건 해상 문화에서 육지 문화로 변화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흥미진진한 설명이 없어서인지 관람객들이 스쳐지나간다. 음.. 그런데 어쩌면 이런 설명이 나한테만 흥미진진할 수도 있겠구먼. 하긴 이런 설명을 전시실에 다 풀어놓을 순 없다. 그러려면 얼마나 큰 박물관이 필요하려나.
봉황동 유적지의 배조각은 배모양의 토기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 토기들을 통해서 얼마 남지 않은 고대의 배를 상상해 보라는 의미이겠다. 고대 사람들은 토기로 자신들이 자주 보는 것들을 만드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 신기한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는 것과 비슷한 마음일까? 당시엔 사진이 없었으니 이렇게 현물(?)로 만들어서 남겼는지도. 하긴 요즘에도 아주 큰 배나 기차, 비행기들을 실제의 몇 백 분의 일의 비율로 축소해서 만들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토기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맨 마지막 유물부터 설명해서 전시관을 다 둘러본 느낌이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전시관의 1층은 선사시대부터 가야가 신라에 병합될 때까지의 부산 경남지역의 고고학 유물을 시대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2층은 가야의 유물만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발굴된 유물을 중점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이 전시들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번에 재개관을 하면서 관람객들이 좀 더 쉽게 전시를 볼 수 있도록 구성을 했다. 예전 전시와 비교하면 학예사 선생님들이 정말로 많이 고민하고 공들였다는 게 느껴졌다.
전시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1층에서 내가 정말 좋았던 부분을 몇 곳을 짚어 보자면, 첫 번째로는 유물로 문화사 연표를 만들어놓은 것.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을 통해서 각 시기별 유물을 볼 수 있게 구분하고, 시기별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양식 등을 적어둔 게 좋았다. 고대사 부분 설명할 때 한큐에 끝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엔 각 시대의 특징이 디지털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고양이도 나온다.
다음으로 좋았던 건 부산 가덕도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의 무덤을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한 것이었다.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떠나보냈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외에도 신석기시대부터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는 시기까지의 토기의 변천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경남지역이 고대사를 고고학 유물을 통해 통사적으로 훑을 수 있어서 흥미롭게 전시를 봤다. 이제 통사를 봤으면 가야 유물들을 보러 2층으로 가자.
2층은 가야의 지배계층이 썼을 법한 보석과 장신구들이 전시된 ‘가야의 멋을 담다’, 가야 사람들이 사용했던 토기와 농업용품들이 전시된 ‘가야 사람들의 삶’, 가야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담겨있는 ‘가야 토기’, 그리고 ‘철의 왕국, 가야’, ‘해상왕국, 가야’로 구성되어 있다.
가야의 멋을 담다는 가야 고분에서 발굴된 여러 화려한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요즘 사용해도 굉장히 멋있을 장신구들이었다. 신라나 백제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에 가서도 느끼는 거지만, 고대인들의 미적 감각은 지금까지도 통할 만큼 아주 세련된 것 같다. 어쩌면 세련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 감각의 디자인들이 통하는 것인지도.
이렇게 화려한 장신구들도 내 눈을 사로잡았지만, 나를 진짜 놀라게 만든 건 가야시대의 토기들이다. 가야가 철의 왕국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토기의 나라다. 신라나 백제도 많은 토기를 남겼지만, 찐은 가야라고 생각한다. 어쩜 이렇게나 다양한 토기들이 있는지. 하긴 6부 연합에서 발전해서 여러 나라로 나뉘어 공존하던 연맹체였으니 그 나라마다 다 다른 개성이 있었을 거다. 이래서 다양성이 중요한 거겠지. 신기한 토기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많은 토기 유물 중에 제일 눈길을 끌었던 건 뿔모양잔과 받침, 그리고 소리 나는 방울잔이었다.
내 예상컨대, 둘 다 술잔이었을 거라고 본다. 뿔모양잔은 받침에 꽂아두었을 것이고, 이건 뭐 아주 빠르게 마셔버리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혹은 요즘 소맥을 말기 위해서 술잔을 모으듯이 여러 잔에 술을 조제하기 위해서 모은 거 아니겠나. 그리고 방울잔은 컵의 아랫부분에 동그란 흙구슬을 넣은 채 구운 거라고 한다. 그래서 흔들 때마다 방울소리가 들린다고. 잔에 술을 부어 뱅글뱅글 돌릴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얼마나 좋을까. 술잔이 비었을 때와 가득 찼을 때도 소리가 다르려나. 예쁜 방울 소리 들으려고 술잔을 채웠다 비웠다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21세기 애주가. 암튼 나는 이 토기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가야인들이 어떻게 사용했을지 상상해 보느라 한참을 서성거렸고, 오래 보았더니 갖고 싶은 토기도 생겼다. 누가 준다고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리모델링 전에 김해박물관에 왔을 땐 토기가 너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토기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토기를 다 보여주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뭘 봐야 하는지 모른 채, 가야엔 토기가 참 많았구나 하고 지나갔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토기를 주제별로 엄선해서 보여주어서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수장고에 굉장히 많은 토기들이 있겠지. 그 토기들은 특별전시 때 특별한 주제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내 전공은 사학이다. 사학과 고고학 모두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 공부한다는 건 비슷하지만, 공부하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 사학은 문헌기록에 좀 더 치중한다면, 고고학은 유물기록에 더 중점을 둔다. 하지만 문헌과 유물 기록이 서로를 보완해야 과거를 좀 더 사실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다. 그래서 사학도 고고학 발굴성과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나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 문헌기록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게 수월한 사람이다. 내가 공부한 가야사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존한 것이고, 그래서 문헌기록 보다 고고학 유물기록이 많은 김해박물관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자주 와서 유물들과 문헌을 맞춰보면 기록의 공백을 메우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아주 오랜만에 김해박물관에 와서 가야의 유물들을 보니 가야사를 다시 한번 공부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이 의지를 바탕으로 온 김에 수로왕비릉까지 가기로 했다.
수로왕비릉은 박물관 뒤편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데.. 여기서부턴 국립김해박물관 번외 편으로 쓰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