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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Aug 30. 2024

오지라퍼에겐 한행이정을

부산근현대역사관

두 번째 박물관은 어디로 갈까. 사실 어디로 갈 것인가는 첫 번째 글을 쓸 때부터 예전부터 정해뒀다. 당연히 부산근현대역사관에 가야지. 요즘 내가 제일 자주 방문하는 곳이니까. 그치만 아침에 한참을 잠자리에 누워서 밍그적거렸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부산의 원도심이라고 불리는 중앙동에 있다. 중앙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형성되고 발전한 곳이다 보니, 거리가 좁고 골목이 많아서 차들이 다니기엔 좀 불편하고, 주차장이 없는 건물도 많다. 당연히 부산근현대역사관도 주차장이 없다. 한마디로 운전해서 가기엔 상당히 불편한 곳이라는 것이다. 주변에 공영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주말의 주차장은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주차가 하늘의 별따기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용두산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기 위해서 차들이 아주 길게 늘어선다. 이쯤 되면 도로도 주차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차들이 주차를 위해서 오랜 시간 대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관에 갈 때 별일 없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간다. 다행히 내 활동지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긴 하다. 그러나 몇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다. 내가 멀미가 꽤나 심한 편이라 간혹 도로가 엉망인 곳을 지나면 멀미를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는 30분 이상 타면 멀미를 한다. 그런데 역사관까지 가는 도로가 엉망이기도 하고, 버스로 가면 최소 50분이 걸리는 거리라 역사관까지 가는 동안 멀미 확률 99%를 보장!!(내가 산 로또 1등 당첨 확률이면 좋겠다). 그럼 지하철은 어떤가? 그 생각은 하지도 말자. 역사관에 가려면 지하철 1호선 중앙역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하는데, 족히 10분은 넘게 걸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길마저 약간 경사진 거리이다(이 거리가 경사진 이유는 다음 기회에 길게 써보겠어요). 요즘 부산의 더위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더위인데, 8월 한낮에 이런 길을 걷는 건 못할 짓이다. 그러니 지하철로 가는 건 단호히 각하. 말도 꺼내지 마시라. 물론 지하철로 오셔야 하는 분들도 있을 건데, 여름에 오시면.. 존경합니다만, 나는 지하철 못 타겠다.


한참을 누워서 생각했다. 운전하긴 힘들어도 내 컨디션의 쾌적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승용차를 운전해서 갈 것인가, 버스에선 기절하듯 자고 일어나면 멀미를 참을 만하니 주차 대란에 신경을 쓰느니 그냥 버스를 타고 갈 것인가(당연 지하철 이용은 선택지에 없음). 그래서 내 선택은? 버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사관 근처에서 펼쳐지는 운전과 주차 스트레스 보단 멀미가 나을 듯하다. 그 복잡한 곳에 나까지 보탤 필요는 없지. 부디 오늘은 멀미가 덜하길. 버스 기사님이 천천히 달려주시길을 기도하며 집을 나섰다.



요즘 내 기도발이 약해진 것 같다. 역사관에 도착하자마자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냉수부터 콸콸콸 입에 부어 넣었다. 자주 와도 이렇게나 적응이 안 되는 내 몸뚱이도 한 고집하는구먼. 정신 차리고 역사관에 들어가 볼까나.


부산근현대역사관 건물을 잠깐 설명하자면, 역사관은 본관과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관은 1층은 카페(카페부사노)와 작은 전시실, 2층은 특별전시관, 3,4층은 상설전시관이고 지하엔 미술관이 있다. 별관은 1층과 2층엔 도서관과 휴식공간 그리고 그 위층으로는 사무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본관과 별관의 1층은 모두 박물관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의 이미지로 꾸며졌다. 이게 다른 역사관이나 박물관과 가장 큰 차별점이다. 역사관이라고 해서 약간은 긴장감을 가지고 들어섰는데 예상과 다르게 카페와 넓은 휴식공간을 마주하게 되면 경계의 벽이 조금 허물어지지 않을까.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박물관에 오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대다수가 비자발적으로 끌려오거나 보내지는 곳이 박물관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역사관의 첫 모습이 이렇게 편안한 모습이면 박물관에 대한 방어가 조금은 풀어지지 않을까. 아마 역사관을 기획하신 분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을 하시고 만드신 게 아닐까 하고 짐작만 해본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부산근현대역사관이 요새 힙한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고(아니면 말고).


이렇게 힙한 부산근현대역사관은 건축물 자체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요즘 많은 관공서들이 새롭게 건물을 지어서 사용을 하지만, 부산근현대역사관은 근대와 현대의 상징적 건물들을 재활용해서 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역사관의 별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이고 본관은 196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 두 건물을 보수 수리하여 2023년에 지금의 부산근현대역사관으로 개관을 했다(정확히는 별관은 2023년 3월 1일, 본관은 2024년 1월 5일에 개관했다).


사실 부산근현대역사관 이전에는 부산근대역사관이 있었다. 지금의 별관인 건물만으로 만들어진 역사관이었는데, 2003년에 개관을 했었으니 20년 만에 다시 확대 개관한 것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건물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이 이 건물을 사용했었다. 해방 직후엔 신한공사*로, 이후엔 미국 공보원, 한국전쟁 중에는 주한미국대사관,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국문화원, 미국영사관, 아메리카센터 등으로 사용되다가 세기말인 1999년에 부산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이후 여러 논의 끝에 부산지역의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인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변신했고, 2023년에 한 번 더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으로 변신했다.


*신한공사 :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 미군정은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토지와 재산 등을 몰수하였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개편하여 만든 것이 신한공사이다.


그렇다면 본관은 원래 어떤 건물이었을까. 본관은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사용하던 건물인데, 한국은행이 문현동으로 이전을 하면서 이 건물의 소유권을 부산시가 가져오게 되었다. 이 건물이 왜 중요한가 하고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이 장소에 한국은행이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부산근대역사관 주소는 '중구 대청로 112'인데 예전엔 '중구 대청동 1가 44'로, 일제강점기 조선은행 부산지점이 있었던 장소이다. 1909년 대한제국은 중앙은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국은행'을 만들었는데, 1911년 일제의 <조선은행법>에 따라 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나라를 빼앗기고 나니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소속도 바뀌게 된다. 대한제국 통감부에서 조선총독부 소속으로 바뀐 것. 일제가 한반도를 좀 더 수월하게 척식하기 위해서 이 은행을 이용한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전국에 조선은행 지점들도 설치했다. 그 조선은행 부산지점이 대청동 1가 44에 있었다. 해방 이후 조선은행은 다시 대한민국 정부로 소속이 바뀌어 '한국은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확히는 1950년 5월 <한국은행법>을 제정하면서, 조선은행은 없어지고 한국은행이 생기면서 조선은행의 업무를 이관받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런데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정부의 많은 기구들이 부산으로 피란을 왔고, 한국은행도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 전쟁 중에는 부산이 수도였기 때문에 본점도 부산에 있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수습이 되면서 한국은행 본점은 서울로 가고, 원래 있던 한국은행은 부산지점이 되었다. 그러다 1963년 12월에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을 건립했는데, 그게 바로 이곳 '중구 대청동 1가 44'인 것이다. 100여 년 동안 이 장소는 중앙은행의 터였다. 이 장소는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어도 부산 금융의 중심지였다. 금융의 중심지인만큼 경제사와 식민수탈과 관련해서 많은 역사들이 있기에 이 장소가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물 두 곳은 개보수하여 부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관으로 재탄생했다. 건물 속 전시물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도 많은 역사를 담고 있다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역사로 똘똘 뭉친 공간이 바로 부산근현대역사관이다. 그러니 내가 사랑할 수밖에.


오늘은 역사관에 가서 무엇을 볼까. 박물관에 가서 딱 하나만 잘 기억하고 와도 그날 관람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것을 보진 않는다. 레이어드 하듯이 여러 번 보고 또 보는 게 나의 박물관 관람법이다. 자주 올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물론 실제로는 자주 안 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랄까. 아무튼 오늘도 전시물 하나만 잘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들어섰는데, 부산관광공사에서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네? 바로 아웃도어미션게임 <수상한 의뢰>. 역사관 상설전시를 관람하면서 미션문제로 풀어보는 게임인데, 사실 몇 주 전부터 이 게임을 신청해 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나에겐 너무 쉬운 문제일 것임에 뻔한데 그래도 궁금하니까. 네이버 예약을 통해서 구매할 수 있는 거라 네이버 계속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역사관 1층에 들어서니 입간판 광고가 나를 유혹한다.

그 밑에는 이런 글귀도 있다. 참가자 중 선착순 100명에는 역사관 기념 머그컵을 준다고. 그럼 해야지. 약간 반칙 같지만, 나는 머그컵이 갖고 싶으니 해야지.


역시나 문제는 (나에겐) 쉬웠고, 아주 재빠르게 다 맞히고선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미션완료 기념품과 머그컵을 수령했다. 직원분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99번째 참여자였다고. 와.. 나 조금만 늦었으면 머그컵 못 받을 뻔했네. 오늘 운이 좋다며 눈누난나 휘파람 불며 전시관으로 다시 올라갔다. 분명 전시관을 찬찬히 둘러보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미션 게임이었지만, 상품에 현혹되어 후다닥 둘러보고야 말았네.. 아까 나 천천히 둘러보는 게 나의 박물관 관람법이라고 내 입으로 말했건만.. 하.. 꺼질 줄 모르는 물욕 앞에 나의 원칙 따위.. 뭐, 이제부터라도 찬찬히 둘러보면 되는 거지.

내가 부산의 근현대 역사 중에서 흥미로워하고 관심 있는 시대는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이다. 개항 전만 해도 부산의 중심지는 동래지역이었고, 일본인들이 부산에 들어오면서 원도심이라고 부르는 이 중앙동 일대가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원도심의 지형도, 문화도, 사람도 바뀌게 되는데, 나는 그 과정들을 공부하는 게 참 흥미롭다. 아마도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면서 변한 지형과 문화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원도심의 시작이 개항기부터이기 때문이다. 역사관 주변의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만든 필지가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당시의 지도와 지금의 지도를 비교해 보는 것, 그때의 건물이 지금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이번엔 3층 상설전시관만 둘러보기로 했다.

3층 전시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건 파도가 치는 바닷가이다. 비록 영상이긴 하지만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나갔다 하면서 바닷가에 서있는 느낌을 준다. 그래, 부산하면 바다지. 다들 부산의 바다를 보기 위해서 그렇게들 부산을 찾으니까. 그렇지만 부산의 바다는 관광 혹은 여가를 위한 것이 전부는 아니다. 부산의 바다는 한국의 끝이 아니라 세계의 시작이다. 많은 배들이 드나들며 한국과 세계를 연결할 수 있게 해주는 관문이다. 전시관의 입구에 있는 바다에 배들이 떠다닌다. 이 배들은 3 종류인데, 개항기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던 이양선, 1905년 취항한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연결했던 관부연락선,  1970년 취항을 시작한 부관페리호이다. 그리고 이 배들은 모두 한 등대에서 출발을 하는데, 이 등대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인 제뢰 등대의 모습이라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바다의 등장에 입장하는 사람들 모두 '우와'하는 감탄을 터트린다. 그리고는 등대가 있는 방파제를 배경으로 인증샷 찰칵. 바다 덕분에 박물관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의 거리가 조금 좁아지는 순간. 근데 바다 파도 거품에 부산의 중요한 역사들도 같이 밀려오는 걸 놓치고 가시는 분들도 있다. 부산 근현대의 70여 개의 사건들이 밀려오는데, 그 사건들 중에 아는 사건이 있는지 꼽아보는 것도 재밌을 거다. 그냥 지나가시는 분들한테, ‘저기요 이것 좀 보고 가세요.’ 하고 싶지만 그러면 역사관에 이상한 사람 있다고 소문날 것 같으니까 참아야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살펴보셨으면 좋겠다.


바다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개항기 일본 사람들이 부산에 들어와서 살면서 남긴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포산항견취도>라는 그림이 크게 걸려있는데, 오른쪽엔 그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영상으로 나오고 있다. 영상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도 하거니와, 내용도 흥미로워서 여러 번 보면서 개항기 부산의 모습을 추정해 보고, 지금 모습과 비교해 보는 게 꽤나 재밌다. 세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지만 그 변화가 아주 더딘 것들이 있고, 그중 하나가 지형이다. 그 덕분에 역사 공부의 재미가 있는 것이고 말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의 과거를 알게 되면 내 사는 곳이 더 애틋해지지 않을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사는 곳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알고 싶기도 하고, 알고 나니 더 사랑하게 되기도 하고.


 사실 나는 중앙동, 남포동 일대의 지리가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 눈에 띄는 큰 건물들이 있는 자리는 쉽게 찾지만, 작은 골목길은 좀 헷갈린다. 그럴 때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면 더 재밌게 관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은 혼자서 조용히 관람하는 것으로. 이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개항장 무역과 조선상인의 활동>이라는 판넬이 보인다. '한행이정閒行里程'의 변화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한행이정이라는 말 자체가 어렵다 보니 사람들이 건너뛰기도 하고, 잘못 이해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한행이정閒行里程’은 조선의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거리를 제한한 규정이다. 조일수호조규부록(1876년)*에는 부산항으로부터 10리로 규정을 했는데, 1882년 조일수호조규속약**을 채결하면서 50리로 늘어나고, 1884년에는 100리로 늘어났다가 이후엔 아예 제한이 없어지게 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간행이정’이라는 표현으로 고쳐서 검색되는데, 정확한 표현은 ‘한행이정’이 맞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2월에 [조일수호조규], 일명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고, 조일수호조규의 세부사항을 규정하여 체결한 조약이 조일수호조규부록이다. 조일수호조규부록 5조에 한행이정이 규정되어 있다.


**1882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2개의 조항으로 된 조약이다. 이 조약에서 개항지(부산, 원산, 인천)의 한행이정을 50리로 확대하고 2년 뒤엔 100리로 할 것으로 정했다.


개항장에서 10리는 약 4km로 멀지 않은 거리이다. 일본 상인들이 직접적으로 조선인 소비자에게 물건을 판매할 수 없어서 여러 단계를 거쳐 물건을 판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약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거리가 확대되다 보니 이제 일본 상인들이 조선에서의 상행위가 더 자유로워진 것이다. 즉 일본의 경제적 침투가 더 수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내용을 설명해 놓은 부분이 <개항장 무역과 조선상인의 활동>인데 개항기 조선과 일본 간의 조약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픽토그래픽을 해석하는 게 조금은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박물관에도 도슨트가 필요한 것이겠다. 아니나 다를까,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 하는 어린이와 보호자가 와서 관람을 하는데, 보호자가 어린이에게 개항기 부산항의 한행이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계시는데, 글과 픽토그래픽을 이해 못 하고 계시는 것. 아.. 답답하다. 알려드리고 싶다. 한행이정이라는 것은 일본인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거리를 제한한 것이고, 이게 처음에는 10리였는데, 나중엔 50리, 100리로 늘어나게 되고, 그래서 처음에는 픽토그래픽의 위줄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서 물건을 팔았지만, 나중에 거리가 늘어나면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건을 팔게 됩니다, 하고 말이다. 근데 보호자가 어린이에게 진지하게 설명을 하고 계셔서 내가 알려드려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마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두 사람의 머릿속엔 이 내용이 오래 남지 않을 거고, 그러니 잘못된 내용이 오래도록 기억되지도 않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갈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권위의 문제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틀린 정보로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역사공부하는 게 나 좋자고도 하지만 나만 좋자고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계속 이렇게 마음속 많은 내가 갈등을 하다가 결국은 나대고 말았다.


“혹시 제가 실례가 안 된다면 한행이정에 대해서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했더니 보호자분께서 조금 당황하시더니 “…아, 네.”라고 대답하셨다. 그 순간 또 짧은 갈등을 했다. ’어느 정도까지 알려드려야 하지? 이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 괜히 나댔네..’ 이놈의 주둥아리..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 너무 깊이 있게 말씀드리면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서 한행이정의 뜻과 픽토그래픽만 설명을 드렸다. 왠지 내 말을 의심하는 눈초리로 보시는 것 같긴 했는데, 그렇다고 내가 역사 공부하고 있다고 밝히는 건 더 우스워질 것 같아서 간략하게 설명만 드리고 그럼 이만.. 하면서 총총총 물러났다. 하.. 한행이정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필요한 거였네. 나는 0.003리로 제한해야지 원.. 그렇지만 다음 주에 또 나대고 있겠지. 휴.. 부끄러우니까 이번 역사관 관람은 여기까지만. 현대사까지 봐야 하는데, 언제 다 본담? 일단 모르겠고, 아까 미션 수행하고 선물로 받은 까사부사노 할인 쿠폰으로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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