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사담] 부산박물관: 1674 곤여전도 - 신비한 세계여행
나는 부산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도 다른 지역처럼 여러 박물관과 역사관, 전시관들이 있다. 그런데 부산의 여러 박물관 등이 좀 흥미로운 건, 문화체육관광부소속의 국립박물관이 없다는 것이다. 부산박물관도 부산시 소속이고, 부산근현대역사관도 부산시 소속이다. 국립부산해양박물관도 있는데, 이건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이 아니라 해양수산부 소속이다. 해양박물관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부산시 소속 박물관(전시관)이다.
가끔 사람들이 부산박물관이 국립이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하는데, 나는 부산 시민으로서 이 사실에 약간의 자부심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지방소멸을 이야기하고, 중앙정부에서 지방 정부에 보조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자치적으로 박물관 예산을 편성해서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시립이기에 중앙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부산시만의 특색 있는 박물관을 꾸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 있겠다. 물론 시립이라 아쉬운 점도 있고, 국립박물관이 되면 또 다른 장점이 있겠지만, 아무튼 난 부산박물관이 시립이라 무척 좋다(부산박물관에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아서, 그분들의 의견은 반영하지 못한 점 양애부탁 드립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느낌이고, 저의 감상이니까요!).
부산박물관은 1977년에 개관한, 생각보다 꽤나 오래된 박물관이다. 아마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 치고, 어릴 적 부산박물관에 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다. 부산박물관 옆은 UN기념공원이고, 길 건너는 문화회관이라서 이 세 곳을 묶어서 유치원생들 혹은 초등학생들이 자주 견학을 온다. 나도 부산박물관과 UN기념공원에서 찍은 어릴 적 사진이 있다(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어릴 적 기억은 별로 잘 안 난다. 그냥 사진이 있으니 갔었나 보다 생각하는 중...). 또 이 세 기관이 공원길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걷기에도 좋아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산 시민이면 꼭 한 번은 오게 되는 곳이 부산박물관이다.
부산박물관은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데, 위치가 내가 활동하는 곳과는 가깝지가 않아서 자주 찾지는 못한다. 오랜만에 부산박물관에 왔다. 당연히 데이트하러 오는 건 아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하긴,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해주세요!'라는 말에 역사랑 결혼했다고 맨날 눙치고 있으니 데이트인 것도 맞지, 뭐. 하. 하. 하. 하.), 특별전시가 새로 열리면 방문을 하는 편이다. 최근까지 부산박물관에서 <수집가 傳 : 수집의 즐거움 공감의 기쁨>이라는 전시가 있었고, 그 뒤를 이어서 <1674 곤여전도 - 신비한 세계여행>이 전시 중이다.
<1674 곤여전도 - 신비한 세계여행>, 이 전시는 17세기에 그려진 '곤여전도'라는 채색 필사 병풍 지도 한 점만 가지고 열린 특별기획전시이다. 그래서 다른 특별 전시처럼 많은 유물을 기대했다면 약간은 실망을 할 수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딱 한 점만 가지고 하는 전시이기 때문에 이 전시 유물을 어느 때보다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봐야 할 것들이 많이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퐁당퐁당 대충 보고 지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몇 점만 자세히 전시하는 게 좀 더 마음이 편하고 만족스럽다. 요즘 들어서 여러 박물관이 이렇게 한 점 유물로만 하는 특별기획을 자주 하는 것 같다. 박물관까지 먼 길(?)을 왔는데 하나만 보고 가냐며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기보단 하나를 제대로 보고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이런 특별기획전도 좋다.
전시관 입구는 곤여전도와 그 지도에 등장하는 신기한 동물들을 복원한 영상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오우.. 기술 참 좋아졌네,라는 세상 다 산 늙은이처럼 읊조리고 입장. 역시나 사람이 별로 없다. 내가 기대했던 바(학예사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시겠지만..). 쾌적하게 전시실을 누비며 곤여전도를 구경했다. 설명 패널을 읽고, 지도의 그림을 하나씩 보고, 옆에 적인 글자는 대충 읽고 -한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긴.. 이거 번역 좀 해서 같이 전시해 주시면 안 되나요?? - 음음..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큰 목소리 둘이 들린다.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커플 한 쌍이 관람을 하고 있다. 서로 감상을 주고받으며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소리가 타인의 관람에 방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 말이다.
저 커플은 전시가 목적이 아니라 데이트가 목적임이 틀림이 없었다. 박물관이 시원하긴 했지만,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꼭 붙어서 그림만 대충 훑고 가는 모양새가 전시보다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더 지대한 것이 분명했다. 서로에게 서로가 최고의 관심사라니 정말 바람직한 커플이다.
전시관은 아주 조용했고, 두 사람의 목소리는 조금 컸고, 어쩌다 보니 내 귀에 너무 잘 들렸다(제가 평소에도 귀가 밝거든요.. 헤헤). 다른 사람이 두 사람 옆에 있었다면 별 문제없는 대화였으리라. 데이트가 목적일지라도 박물관을 데이트 장소로 삼는 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아주 바람직하며 권장할 일이겠다(여러분 데이트는 박물관입니다!!). 하지만 하필이면 내가 옆에 있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래 대화에는 약간의(어쩌면 다량의) 각색이 있음을 알립니다
- 지도가 되게 이상하네?
= 근데 조선을 왜 이렇게 그렸어?
- 세계지도라서 그런 것 같은데?
= 이거 언제 그린 거야? 오래된 건가?
- 그림도 있네?
= 근데 뭔지 모르겠다.
- 음.. 이게 단가? 볼 거 없네. 가자.
= 그래
사실 <곤여전도>를 본다면 저런 감상이 틀린 건 아니다. 정말로 조선을 이상하게(!) 그려놨고, 지도임에도 이상한 동물 그림도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커플 외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걸 들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귀가 참, 밝습니다..). 그런데 저 대화가 내 기억에 남은 이윤 저 커플이 저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 보지 않고 옆의 실감영상실로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 옆에 붙어있는 패널에 붙은 설명은 읽어주고 가시지. 전시실은 조금 어둡고, 그림이 큰 것에 비해서 글자는 작고 그 내용 또한 많(은 것 같)으니, 그림만 보고 간 것도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패널을 읽으면 해소될 질문들을 주고받고서는 그냥 가는 것이 너~~~~ 무 안타까운 것이다.
아.. 알려주고 싶다.. 이 지도가 어떤 지도인지!! 물론 패널에 다 적혀있지만!
"곤여(坤輿)"는 큰 땅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확장되어 지구를 지칭하는 의미가 되었고, '곤여-'라는 말이 붙은 지도는 세계지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곤여전도]는 17세기에 제작된 세계지도로, 청나라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페르디난드 페르비스트라가 그린 것입니다. 예수회는 가톨릭의 한 종파로,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님(226대)도 이 예수회 소속이시지요. 이 예수회에는 파리외방전교회라는 선교 교회가 있어서, 여기 소속 신부들이 전 세계로 선교를 다녔습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병인박해 또한 이 예수회와 관련이 있죠.
이 [곤여전도]는 페르비스트라가 그려서 중국으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북경에서 제작한 세계지도입니다. 페르비스트라는 마테오리치가 그린 [곤여만국전도](1602)를 발전시켜 이 지도를 만들었는데요, 마테오리치가 선교를 위해 지도를 그린 것처럼, 페르비스트라도 청나라 사람들에게 서양의 문화를 알리면서 자신들의 종교를 선교하기 위해서 이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도는 영어가 아닌 한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곤여만국전도]와 그 당시(1674)까지 축적된 서양의 천문, 지리적 성과를 더해서 만들어진 지도가 [곤여전도]입니다. 그래서 [곤여전도]에는 1606년 새롭게 발견된 오세아니아가 그려져 있고, [곤여만국전도]가 옆으로 길쭉하게 하나의 타원으로 그린 것과는 다르게 [곤여전도]는 동반구와 서반구로 나누어 그린 양반구형 지도이기도 합니다.
[곤여전도]는 여러 개가 남아있는데, 이번에 전시된 유물은 부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채색 필사본 지도 병풍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곤여전도]는 대다수가 목판본이고, 필사본도 있지만, 이 유물은 비단에 필사 후 채색하여 병풍으로 만든 것으로, 이러한 형태로 남은 건 이것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하단부에 '강희갑년(康熙甲年)'이라고 쓰여있어서 1764년에 제작된 초간본을 필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지도가 언제 제작이 되었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글자의 서체와 그림의 화풍을 근거로 18세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곤여전도]에는 지구의 형태, 지형, 천문과 기상, 자연현상 등 당시의 과학과 지리학적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이 내용은 지도의 가장자리에 빼곡하게 글로 적혀있는데, 이걸 '주기(注記)'라고 부릅니다.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는 입구에 있던 작은 팸플릿에 나와있으니 나중에 꼭 한 번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도에는 각 대륙에 살았던 동물들도 그려져 있는데요, [곤여도설]이라는 책에 실린 다양한 동물들을 그려두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도 있지만, 굉장히 신기한 동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유니콘처럼 보이는 독각수라던지, 울버린이라는 이름의 동물도 있구요. 또 ‘소’라는 이름이지만, 우리가 아는 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동물이 그려져있기도 합니다. 또 인어도 있네요.
어떤 동물이 있었는지는 오른쪽 패널에 그려져 있어요. 오른쪽으로 가시면 실감영상실이 있습니다. 거기엔 이 지도에 나오는 동물들을 영상으로 표현해 두었는데, 이 패널을 한 번 읽어보시고 가면 그 영상이 더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라고 설명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까워하며 그 커플이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진짜 지켜봤다는 게 아니고요, 그냥 뒤통수로 가는 걸 느꼈다는 의미입니다).
학예사 선생님께서 이 전시를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상시로 하는 것이 아니라서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해설 없이 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도슨트가 주말에도 있으면 좋으련만, 대개 평일 낮시간에 하고 있어서 좀 아쉽다. 이 전시를 기획한 선생님들이 나보다 몇 백 배 더 잘 알고, 재밌게 말씀해 주실 것 같은데 말이다. 주말에도 도슨트 프로그램이 생기면 좋겠다.(물론 학예사 선생님들도 주말에 쉬셔야죠.. 휴일 보장 무척 중요합니다!!)
암튼 아쉬움(어떤 아쉬움인지? 사람들이 전시를 자세히 보고 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인가, 나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인가, 주말 도슨트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인가?)을 뒤로하고 실감전시실로 이동했다. 실감전시실은 지도를 영상으로 재구성한 거였는데, 동물들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게 너무 신기했다. 입장하면서 생각한, 요즘 기술 좋아졌네, 를 다시 한번 읊조리며 넋 놓고 구경했다. 옷이 조금만 더 편했으면 바닥에 앉아서 봤을 텐데(만약에 이 글을 읽고 전시 보러 가신다면 바닥의 빈백에 앉아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상설전시에선 이렇게 한 가지 유물에 대해서 공을 들이기 쉽지 않다. 이런 특별 전시라서 유물 하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공들여 자세히 설명할 만큼 중요한 유물이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유물을 선정하고 특별 전시를 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박물관에 오신 분들이 조금만 더 꼼꼼히 봐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요런 투덜거리는 글을 써봤는데, 사실 박물관에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박물관 문턱이 낮게 느껴져야 자주 오고, 그러다 보면 유물도 보게 되고 관심도 갖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앞으로 박물관에 사람이 북적거리면 좋겠는데, 흠.. 그러면 나는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