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혼잣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희 Sep 27. 2023

추석, 그 분주하던 시절

젊을 때 미용실 가는 것은 꽤 즐겁고 유쾌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이거만큼 귀찮은 일이 없다. 

직장 다닐 때 분기 1회 정도는 머리를 했지만, 반년이 넘도록 지금은 미용실에 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예약하지 않고 가면 기다리기 일쑤고, 예약해 시간 맞추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두 시간 이상 머리를 하고 미용실에 않아 있는 일은 세상 귀찮은 일이 되었다.


여름 내내 질끈 묶었던 머리가 가을이 되어 풀고 나니 지저분하고 더 이상 봐줄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징가 Z에 나오는 아수라 백작의 얼굴 반은 남자, 나머지 반은 여자처럼 염색모가 자라 머리의 반은 희고 나머지 반은 검은색이 되었다.

젊은 여자와 할머니가 혼재된 현대판 아수라 백작의 모습이다. 


추석맞이란 명분으로 게으름을 뒤로하고 염색과 커트를 하기 위해 미용실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두 명의 손님이 이미 파마를 말고 있었고 한 명은 염색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여자들 틈바구니 속에 남자 한 분도 꿋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의 내적 고민을 하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기다림을 선택했다.

1시간이 지나도 차례가 오지 않는데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못 가고 실없이 TV와 핸드폰을 번갈아 쳐다보며 지루함을 이겨내고 있다.



AI 가 얼굴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알아서 손질해 주는 세상이 오려나? 


지루한 마음에 별별 상상을 해보며 미용실 벽시계를 들여다본다. 

기다리는 중에도 손님들을 계속 들어와 좁은 미용실에 열 명도 넘게 의자에 다닥다닥 앉아있다.

아마 추석 명절 전이라 두발 정리를 하기 위해 온 손님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일모레면 벌써 추석이다.

모든 게 편해진 세상이라 추석 준비도 예전처럼 분주하지 않고 한가로운데 미용실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기억 속 어릴 적 추석 명절은 늘 분주함 그 자체였다.

일주일 전부터 엄마는 양은솥과 크고 작은 냄비며, 스테인리스 밥그릇 할 거 없이 그릇이란 그릇을 모두 꺼내 시간 나는 대로 닦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그릇에 윤이 나도록 닦아 제자리에 놓으면 우리 집 부엌도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그릇 닦기가 끝나면 집안 이불을 제다 꺼내 마을 어귀 공동 우물가로 가져갔다.

큰 통에 이불을 넣고 하이타이를 풀고 우리 남매에게 들어가 발로 밟으라고 시키셨다. 

엄마가 시키는 다른 일들은 하기 싫어도 이것만큼은 정말 재밌는 놀이였다. 

둘 둘이 편을 먹고 발로 질근질근 밟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

가을 하늘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듯이 최선을 다해 높이 뛰었다.

하얀 거품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걸 보며 우리들은 깔깔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엄마는 추석 이삼일 전부터 나를 데리고 부지런히 시장에서 나물과 고기, 술 등 제수에 필요한 장을 봐오셨다.

쫄래쫄래 따라가 고구마 맛탕 하나를 얻어먹는 즐거움에 엄마가 시장바구니를 들면 나도 일어난다.

시장가기는 네 남매가 서로 원하는 일이지만, 장바구니를 들어야 하는 이유로 첫째인 내가 가는 일이 많았다.

 

가난해 늘 먹을 것이 없던 우리 집도 이때만큼은 부잣집 부럽지 않은 시간이 된다.

부지런한 엄마는 방앗간에서 쌀을 빻아 고운 송편을 빚고 푸짐한 전까지 부치면 추석 전날에는 녹초가 된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네 남매를 데리고 변두리 동네 허름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른다.

그리고 보름달이 뽀안 얼굴을 부끄럽게 내밀 때쯤, 

대중목욕탕에서 묶은 때를 벗겨내고 개운한 상태가 돼야 비로소 추석 전날의 분주했던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닌데 새삼 울 엄마의 고달팠던 추석 주간 행사가 생각이 난다.  


이런저런 추억을 소환하다 보니 내 차례가 왔고 드디어 염색하고 머리를 잘랐다. 

머리를 하고 나니 거짓말 보태 10년은 젊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 맛에 엄마도 열심히 추석맞이 행사를 했던 건 아닌가 싶다.

엄마의 추석 의식을 수십 차례 겪고 어린 네 남매도 이제 다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자신의 몫을 하며 산다.

모든 게 팍팍하던 시절, 엄마는 주술처럼 추석 의식을 하며 우리 네 남매의 안녕을 기원하며 키워냈다.


낼이면 엄마와 아빠를 보러 간다.

그 시절, 젊고 고은엄마의 딸,

아직 어리고 착한 모습으로 울 엄마를 보러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잊고 지낸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