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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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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Nov 12. 2023

시 읽는 계절

식탁에 노트북과 독서대, 책 몇 권 올려두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방 안에 있는 것보다 창밖이 훤히 보이는 식탁 위가 더 마음에 든다.

늦가을 청량한 빗소리 들으며 책 보는 것도 좋고, 

무심한 가을바람에 단풍잎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차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수북한 나뭇잎들을 치우는 고마운 경비 아저씨 손길이 분주하다.

거실 창으로 섣부른 겨울 빼꼼히 들어오려고 기회를 엿보는지 날씨가 매서워졌다.  

겨울아! 조금 더 있다 오렴.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타고 에릭 사티(Eric Satie)의 짐노페디(Gymnopédies)가 차분히 내 공간을 메우면

마음은 가을 깊은 곳에 다다른다.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연인 수잔 발라동이 가난한 음악가 에릭 사티를 만나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6개 월만에 그들은 파국을 맞이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수잔 발라동을 향한 그의 마음은 사랑이 끝나고서도 식지 않았다.

사티가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후 보내지 못한 사랑의 편지가 300통이나 되었다고 한다.

수잔 발라동을 향한 그의 마음이 음악 곳곳에 느껴지는데 왜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을까?


그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알 수 있지만 발라동의 입장에서 사티의 사랑이 버겁고도 무서웠겠다 싶다.

집착에 가까운 사랑으로 힘들어했을 사티의 음악이 이 가을 절절하게 들린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시간, 

허전과 쓸쓸 그 어디쯤에서 마음이 주체 못 하고 이리저리 나부낀다.

쓸쓸함과 가을은 원래 동의어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바람이 불면 시를 쓰고 싶다.


며칠을 끄적이다 말고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

문장 안에 어색하게 끼워놓다 버려진 수많은 단어들이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다 버린 장난감처럼

컴퓨터 폴더 안에 갇혀있다.


지금은 숨죽여 있지만 또 어느 날 

불쑥 나와 한바탕 난리를 칠지도 모르겠지만,





학교 다닐 때 가을이면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한 편 적어 내 마음인 양 친구에게 전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시를 쓰지는 못하고 

시인의 말을 빌려 내 마음을 토닥이며 가을밤을 보낸다. 




엽서

                            정호승


은행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은행나무 가지에 걸린 별 하나 따서

만지작거리다가

편지봉투에 넣어 너에게 보냈는데

받아보았는지 궁금하다


짙푸른 여름이 인사 없이 가버리고 

슬그머니 가을이 왔는가 싶더니 호시탐탐 못된 성질머리 앞세워 겨울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홀연히 떠나갈 가을이라

아쉬움이 많은 계절


따듯한 말을 건네지 못한 가족에게

한때 좋아했던 사람의 이름조차 잊은 무심한 나에게

작은 일에 서운해하며 나잇값 못하는 나에게

센척하는 한없이 나약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나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시로 쓰고 싶었던 게지.


이 가을이 지나도

마음만은 누추하지 않은 사람

보듬고 살피는 잔잔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게지.


밤이 길어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

오늘도 시를 쓰지 못하고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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