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단편소설#1
꼬마는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작은 새 한 마리를 받았다. 샛노란 털의 보드라운 새는 목소리가 아주 예뻤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비타’야!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거야!”
꼬마는 비타를 데리고 마을 광장으로 갔다. 꼬마가 노래를 시작하자 비타가 함께 지저귀었다. 둘의 화음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쩜 저렇게 소리가 아름다울까?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도대체 새의 종류가 뭐야? 나도 갖고 싶어!”
“꼬마야! 한 곡 더 불러주렴. 돈을 지불 하마!”
마을 광장엔 꼬마와 비타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인 관중들로 가득 찼다. 한껏 흥이 오른 꼬마는 저녁이 될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관중들 또한 그 자리를 함께했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꼬마와 비타는 마을 광장으로 나섰다. 사람들 모두 자신과 비타를 사랑해 주었기에 힘이 든 줄 몰랐다. 날이 갈수록 꼬마의 노래 실력이 늘었다. 이에 화답하듯 비타의 목소리도 훨씬 아름다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 광장 중앙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도둑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비타가 있는 새장을 휙 낚아채 도망쳤다. 꼬마가 쫓았으나 어른의 뜀박질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꼬마가 울면서 외쳤다.
“누구든 비타를 구해주세요! 도둑이 내 소중한 비타를 훔쳐 달아났어요!”
마침 길을 지나던 마을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서 비타의 목소리가 나더구나!”
비타는 자신의 위치를 꼬마에게 알리기 위해 열심히 울부짖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방향을 일러주었다.
꼬마가 달려갔다. 그러나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 속에서 도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왼쪽으로 가! 비타의 우는 소리가 들렸어!”
건물 옥상에서 빨래를 널던 아주머니가 꼬마를 향해 말했다. 꼬마는 아주머니가 말하는 방향으로 들어섰다.
“골목 끝으로 가! 비타의 목소리가 거기서 멎었어!”
이번엔 야채 가게 할아버지가 말했다. 꼬마의 발이 더욱 빨라졌다. 멀리서 비타의 나지막한 울음이 들렸다.
골목이 끝날 즈음, 떨어진 새장을 발견했다. 꼬마가 다가갔다. 새장 옆으로 비타가 누워있었다. 목에서 피를 철철 흘렸다. 혹시라도 들킬까 하는 마음에 도둑은 비타의 목을 칼로 베어 버린 것이다.
“비타!”
꼬마가 비타를 조심스럽게 품었다. 비타는 작은 숨을 거칠게 헐떡거렸다.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해야만 했다. 꼬마는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수의사에게 찾아갔다.
“비타가 많이 다쳤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꼬마가 울면서 애원했다. 비타의 상태를 살펴본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치료하기엔 너무 늦었구나. 미안하다.”
꼬마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비타를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나 모두 포기하라는 말뿐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비타의 숨도 그만큼 사그라들었다. 꼬마가 품에 안긴 비타에게 중얼거렸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많이 다쳤어. 정말 미안해.”
광장 벤치에 주저앉은 꼬마가 서글프게 울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꼬마야, 왜 울고 있니?”
꼬마는 남자에게 비타를 보여주었다.
“비타가 크게 다쳤어요. 곧 죽는대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
남자가 비타를 지그시 보고는 꼬마에게 말했다.
“내가 널 도와주마. 따라오너라.”
남자가 앞장섰다. 꼬마는 서둘러 남자를 따라갔다. 비타의 숨이 점점 느려졌다. 둘은 좁은 골목을 지나고도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대장간에 도착했다.
“들어와. 내가 일하는 곳이야.”
남자가 들어가자 대장간 주인이 무뚝뚝하게 반겼다. 그는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노인이었다.
“어르신, 한 꼬마가 울고 있어 데려왔어요.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남자는 이 대장간의 조수였다. 노인이 꼬마를 지그시 보았다. 빼꼼 얼굴을 내민 꼬마는 시선을 떨구었다. 노인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어서 말씀드려. 비타를 치료해 주실 거야.”
조수가 꼬마를 다독이며 말했다. 꼬마는 용기 내어 노인에게 다가가 모은 두 손을 펼쳐 비타를 보여주었다.
“비타를 살려주세요.”
노인이 비타의 상태를 힐끔 살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작고 노란 새의 이름이 비타니?”
노인이 꼬마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나긋나긋한 음성에 꼬마의 긴장이 풀렸다.
“네, 비타에요.”
“그래. 내가 비타를 살려줄 수 있단다. 기계를 이식하면 되거든. 그런데 값이 꽤 비싼데 괜찮니?”
꼬마는 공연하며 벌었던 돈주머니를 꺼냈다. 동전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가끔 은화도 섞여 있었다. 노인이 살며시 웃었다.
“너에겐 꽤 많은 돈이구나.”
“네! 제가 모은 돈이에요! 비타만 살려주시면 모두 드릴게요.”
꼬마가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그러나 노인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구나. 못해도 금화 열 개는 있어야 해.”
금화 열 개라면 집을 한 채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꼬마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꼬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실망스러움과 원망스러움이 교차했다. 조수 또한 꼬마와 같은 마음이었다. 노인이라면 충분히 비타를 살릴 수 있었다.
“어르신, 꼬마에게 너무 높은 가격을 부르신 것 아닐까요?”
조수가 따졌다. 노인은 별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당황한 조수가 꼬마를 보았다. 풀이 잔뜩 죽은 꼬마는 대장간 밖으로 밝을 옮기고 있었다.
“꼬마야, 잠깐만!”
조수가 급히 꼬마를 불러 세웠다.
“내가 비타를 살려볼게. 어르신보단 못해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조수의 말에 꼬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조수는 서둘러 장비를 챙긴 뒤 비타의 목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 목 전체를 기계로 바꾸어야만 했다. 매우 어려운 이식이었다. 조수는 밤을 새워가며 수술에 몰두했고 결국 성공할 수 있었다.
“비타가 살아났구나. 내가 실력이 모자라 목소리까진 원래대로 돌리지 못했어.”
꼬마는 떨리는 손으로 비타의 모습을 확인했다. 목에는 칙칙한 색의 깡통이 붙어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꼬마가 손가락으로 깡통을 건드렸다. 전혀 보드랍지 않은, 뭉툭한 소리가 틱 하고 났다.
“기계를 이식한 거야. 보기 흉해도 어쩔 수 없어.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니까.”
조수가 말했다. 꼬마는 감사하다며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조수는 손사래를 쳤다.
“괜찮다. 난 돈 받고 생명을 살리지 않아.”
“아니에요. 그래도 받아주세요.”
“그렇다면…….”
돈주머니를 받아 든 조수가 안에서 동전 한 닢을 꺼냈다.
“이것만 받으마.”
조수의 말에 꼬마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장간을 나섰다.
비타가 몸을 회복하자, 꼬마는 바로 마을 광장으로 향했다. 둘은 전과 같이 자리를 펴고 합창할 준비를 마쳤다. 어느새 구경꾼들이 가득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기대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꼬마가 노래를 시작했다. 이윽고 비타가 목청껏 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구경꾼들이 귀를 막았다. 꼬마도 노래를 멈추고 비타를 보았다. 비타의 목에서는 끼기긱 하는 기계음이 섞여 나왔다. 이를 전혀 모르는지, 비타는 노래를 계속했다.
“이게 무슨 노래야? 소름 끼쳐!”
“당장 그만둬! 듣기 싫다고!”
“끔찍한 소리야. 예전의 비타가 맞아?”
구경꾼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꼬마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비타는 계속 시끄러운 소리로 울고 있을 뿐이었다.
해 질 녘이 되자 짓궂은 소년들이 광장으로 달려 나왔다.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비타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비타가 끔찍한 소리를 낸다며?”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새라고 자랑하더니, 꼴좋다!”
소년들이 놀려댔다. 꼬마가 살며시 비타를 보았다. 비타가 목을 움직일 때마다 틱틱하며 기계 소리가 났다. 화가 치밀었다. 그것이 비타를 놀리는 친구들을 향해서인지, 노래를 못하는 비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놀리지 마!”
꼬마가 소년들에게 뛰어들었다. 처음엔 놀란 소년들이 밀리는 듯했다. 그러나 머릿수 차이가 컸다. 꼬마는 소년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놀란 비타가 빽빽 소리쳤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기계음이 퍼졌다. 참다못한 소년 하나가 새장을 향해 다가갔다.
“조용히 안 해?!”
소년이 새장을 집어던졌다. 쿵, 하며 새장이 땅에 곤두박질쳤다. 비타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새장 사이에 날개가 껴 부러져 버린 것이다. 부들부들 떠는 비타를 보고 덜컥 겁이 난 소년들은 부리나케 도망쳤다.
엎어져 있던 꼬마가 일어나 새장 속 비타를 확인했다. 저번처럼 숨이 붙어있었지만 위급했다. 꼬마는 서둘러 비타를 품에 안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조수가 꼬마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니?”
“비타가 또 다쳤어요?”
“어쩌다가?”
꼬마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조수가 비타의 날개를 살폈다. 이번에도 수술이 필요했다.
“꼬마야, 날개를 기계로 이식해야 돼.”
“비타가 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꼬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조수는 알았다며 비타를 수술대에 올렸다. 긴 시간 끝에 날개 두 쪽을 기계로 바꿀 수 있었다. 다행스럽단 한숨을 내쉰 조수가 꼬마에게 비타를 주었다. 알루미늄으로 된 날개가 무거워 보였다.
“꼭 잘 봐주어야 해. 이제는 다치게 하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꼬마가 웃으며 동전 한 닢을 내밀었다. 조수는 꼬마의 모습이 무언가 낯설었다. 그러나 이내 동전을 받았다.
비타는 금방 회복되었다. 꼬마가 다시 비타를 데리고 마을 광장으로 나섰다. 비타에게 노래를 시킬 마음은 없었다. 다만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데리고 나온 것이다. 광장의 사람들은 꼬마의 노래만으로도 흥이 한껏 올랐다. 그러나 데려온 비타를 보고서 모두 인상을 찌푸렸고, 발걸음을 돌렸다.
“어휴, 징그러워라. 뭐 저렇게 생긴 게 있담?”
“저게 새야? 고철 덩어리지.”
“움직이니까 더 흉측해.”
광장의 사람들이 꼬마의 노래를 듣는 와중에 중얼거렸다. 꼬마는 비타의 존재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비타만 없다면 꼬마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가버리지 않을 터였다. 노래를 마친 꼬마가 비타를 광장에 두고 집으로 가버렸다. 누군가 비타를 가져가겠거니 하는 바람이었다. 노래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방해하는 새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꼬마가 광장에 왔을 때 비타는 새장 속에 그대로 있었다. 꼬마를 발견한 비타가 빽빽 소리를 질렀다. 밤새 기다린 모양이었다. 꼬마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저런 기계음을 가진 새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꼬마가 새장을 들었다. 툭- 손을 놓았다. 새장이 떨어졌다. 꼬마는 그 짓을 몇 번 반복했다. 깡통으로 만들어진 비타의 목이 찌그러졌다. 알루미늄으로 된 비타의 날개가 떨어져 나갔다. 더불어 다리가 끊어지고 머리가 깨졌다. 그제야 꼬마는 새장 떨어트리기를 멈췄다.
지나가던 행인이 다친 비타를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새가 죽었구나.”
꼬마가 행인을 보고 말했다.
“아니에요. 다시 살릴 수 있어요.”
대장간에 도착한 꼬마가 조수에게 비타를 넘겼다. 이리저리 찢긴 비타의 조각들이 조수의 책상 위에서 나뒹굴었다.
“이게 무슨…….”
“비타가 다쳤어요. 살려주세요.”
꼬마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할 말을 잃은 조수가 손을 내저었다. 꼬마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살릴 수 없는 건가요?”
“아니, 살릴 수 있어. 온몸을 기계로 바꾸어야 해. 그보다 비타가 왜 이렇게 다친 거니?”
꼬마는 조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주머니 속의 동전만 짤랑댈 뿐이었다.
“빨리 수술해 주세요.”
수술이 들어가고 얼마 있지 않아 조수가 나왔다. 비타의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이 기계로 바뀌어 있었다.
“제발 조심해! 또 다치면 손 쓸 방법이 없어!”
조수가 엄하게 타일렀다. 꼬마는 대충 감사 인사를 하고는 동전 한 닢을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드는 조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대장간을 나선 꼬마는 얼마 가지 않아 우뚝 섰다. 아무리 봐도 기계로 된 비타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툭- 비타가 땅에 떨어졌다. 꼬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간절히 삐걱대는 비타의 몸이 흔들거렸다. 건조한 비타의 눈이 초점 없이 흔들렸다.
동전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조수의 뒤에 노인이 섰다.
“그러게 내가 비싼 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잖아.”
“어르신이 수술을 했다면 더 완벽히 살려줄 수 있었어요. 목소리도, 외모도 전과 같이 만들어 줄 수 있었다고요.”
“그렇기엔 꼬마가 돈이 없었지.”
“생명을 살리는 데에 돈이 중요해요? 어르신은 부자만 살릴 수 있잖아요.”
“만약 부자가 비타를 데리고 왔다면, 내가 직접 수술을 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게야?”
“아닌가요?”
“허허, 부자가 왔다면 난 금화 수천 개는 불렀어.”
“네? 그런 돈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맞아. 그런 돈은 없어. 부자는 그냥 돌아갔겠지. 생명은 무엇과도 거래할 수 없어. 가치로 따질 수 없으니까.”
무언가 깨달은 듯 조수가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저 꼬마에게 있어 생명은 이제 동전 한 닢일 뿐이야.”
며칠 후, 마을 광장에 꼬마가 다시 나타났다. 꼬마의 옆엔 작고 보드라운 새 한 마리가 함께 있었다. 뛰어난 둘의 하모니에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 기쁨에 겨운 꼬마가 갈색빛의 털을 가진 새를 보고 말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아이스’야! 당분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