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단편소설#2
<호랑이 등에 업힌 토끼>
햇빛 쨍쨍한 어느 여름날.
한가로운 숲 속 어딘가에서 벼락같은 총소리가 들렸다.
“저 쪽이다 잡아!”
총을 든 남자의 외침에 뒤 따르던 남자 두 명이 각각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내달렸다.
“절대 놓쳐선 안 돼!”
이윽고 총을 든 남자와 몽둥이를 든 남자 둘은 한데 어우러졌다. 손에 든 것만 총과 몽둥이로 다를 뿐 셋 모두 옷차림은 비슷했다. 청바지에 반팔 티 그리고 얇은 가죽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영락없는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어디로 간 거야?”
“저 쪽이다!”
잠시 숨을 고르던 셋은 총을 든 남자의 말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려가는 그들의 발아래로 꺾인 나뭇가지들이 보였다. 작은 무언가가 도망치고 있었고 셋은 그 무언가를 쫓고 있는 것이었다.
“형님 뭔가 이상하지 않소?”
“뭐가?”
“우리가 달려가는 이 길 말이오.”
“그게 왜?”
“조금만 더 가면 우리가 설치해둔….”
빠른 속도로 내달리던 셋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땅이 푹 꺼지면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던 것이다.
구덩이 안에서 아파 신음하는 그들 위로 햇빛에 그늘진 조그마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얼굴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림자는 분명 구덩이에 빠진 셋을 비웃고 있었다.
“어허, 자기들이 쳐 놓은 함정에 빠지다니! 안쓰럽다, 안쓰러워-!”
조그마한 그림자가 조롱 섞인 한탄을 내뱉었다. 그림자의 말에 적잖이 놀란 셋은 아픈 것도 잊은 채 구덩이 위를 바라보았다.
넓게 펼쳐진 구름이 뜨거운 태양 앞을 유유히 지나며 온 숲에 그늘을 드리웠다. 살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바람을 타고 조그마한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토, 토끼가 말을 한다!”
총을 들고 있던 남자가 기겁했다.
“네놈도 말을 하는데 나라고 말을 못 할까? 그나저나 우리 사냥꾼님들 짐은 어떻게 할까?”
하얀 털이 복슬복슬하게 난 토끼가 셋을 보며 진지하게 묻더니 갑자기 폴짝폴짝 뛰면서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를 냈다.
“뭘 어떻게 해? 다 내 것이지! 감히 이 신묘(神卯) 선생을 잡으려 하다니!”
웃으며 배를 잡고 뒹구는 토끼를 보고 구덩이 안의 남자 셋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토끼가 잠시 구덩이 안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뒷다리로 땅을 긁어 흙더미를 구덩이 안으로 들이부었다.
“으악!”
흙더미에 얼굴을 맞고서야 정신이 든 셋은 구덩이 밖으로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신들이 정성껏 파놓은 구덩이 벽에 미끄러져 온몸에 상처만 늘어났다.
“저 망할 놈의 토끼! 요망한 토끼를 잡고야 말겠어!”
화에 못 이겨 울부짖는 사냥꾼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토끼는 그들의 짐을 뒤졌다. 짐 속에는 빵 몇 개와 물이 들어있었다.
“엥? 별 거지 같은 사냥꾼들이구먼!”
구름이 걷히고 다시 뜨거운 햇빛이 온 숲에 내려앉았다. 햇빛 한 줄기가 사냥꾼들의 짐에 부딪히자 무언가 번쩍하며 토끼의 눈에 반사되었다. 이에 놀란 토끼가 펄쩍 뛰더니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근처 수풀 더미 안으로 몸을 눕혔다. 쫑긋 선 토끼의 귀만 파르르 떨렸다.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사냥꾼들의 울부짖음도 사라질 때쯤 토끼가 엉금엉금 잡초 더미 안에서 기어 나왔다. 그 모습이 우습게도 토끼와 상극인 거북이를 연상케 했다. 토끼는 사냥꾼들의 짐들 앞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앞발로 조심스럽게 사냥꾼의 짐을 들어 올렸다. 번쩍거린 그 무언가는 살짝 열린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토끼는 가방을 열어 그 무언가를 꺼냈다. 동그란 쇳덩이 두 개가 연결되어 있었다. 쇳덩이 안으로도 동그랗고 투명한 알 수 없는 것이 꿰어 있었다. 이 알 수 없이 햇빛에 번쩍거렸던 범인이었다.
“이거 참 요상하구나!”
토끼는 한참 동안 동그란 쇳덩이를 햇빛에 비춰보았다. 번쩍이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이리저리 자신의 몸에 대어보았다. 앞발에도 뒷발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몸에는 더더욱 맞지 않았다.
“어허, 이를 어찌한다?”
다시금 고민에 빠진 토끼가 그 요상한 물건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 눈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착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요상한 물건이 토끼의 눈에 달라붙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토끼가 펄쩍 뛰었으나 이내 달라진 자신의 몸에 저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호라?”
저 멀리 뛰어노는 노루 남매, 도토리를 주워 올라가는 다람쥐 어르신의 거친 손, 하늘 높이 떠 있는 참새의 땀방울이 보였다. 그것도 너무나 자세히 보였다. 이전까진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참 신묘하다! 오, ‘신묘(神卯)’라? 나와 잘 어울리겠구나!”
기분이 좋아진 토끼는 구덩이에 빠진 사냥꾼들을 뒤로한 채 깡충깡충 길을 나섰다. 중간중간 길에서 마주친 다른 토끼들이 쇳덩이를 눈에 쓴 토끼를 보고 놀라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니, 신묘 선생! 눈에 쓴 그것은 뭐요?”
“하하, 이것은 자그마한 것들까지 보이는 마법의 눈이라오. 내 사냥꾼들을 잡고 얻었지 뭐요.”
“역시 신묘 선생은 다르군요.”
“내 이것만 있으면 사냥꾼은 물론이고 호랑이도 잡을 수 있을 것이오!”
다른 토끼들의 칭찬에 신이 난 신묘 토끼는 가슴을 한껏 부풀어 올리며 마법의 눈을 앞발로 톡톡 건드렸다.
그때 신묘 토끼가 쓴 마법의 눈에 거대한 무언가가 들었다.
“잠깐……! 모, 모두 피하시오!”
신묘 토끼의 외침에 다른 토끼들은 묻지도 않고 줄행랑을 쳤다. 길가에 홀로 남은 신묘 토끼 또한 근처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이내 신묘 토끼가 숨어있는 바위 앞으로 터벅터벅 소리를 내는 거대한 것이 다가왔다.
“킁킁, 분명히 있었는데.”
거대한 것의 정체는 누런빛의 털과 기다란 흑색 무늬를 지닌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땅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대며 방금까지 있던 토끼들의 냄새를 맡았다.
‘허, 내 입이 문제지. 정말 호랑이가 튀어나올 줄이야!’
신묘 토끼가 숨을 죽인 채 납작 엎드렸다. 작은 앞발이 덜덜 떨렸다. 호랑이의 콧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 흔한 산새들의 노래도 매미들의 울음도 없었다.
불안함에 온몸이 떨린 신묘 토끼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그에게 그늘이 지더니 거세고 뜨거운 바람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기 있었구나.”
바위 위로 거친 콧바람을 내쉬는 호랑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호랑이는 지체할 것 없이 바위를 뛰어넘어 토끼를 덮쳤다.
“으악! 토끼 살려!”
신묘 토끼의 비명과 함께 작은 산새 무리가 나무에서 날아올랐다.
“으응?”
다시금 산새들의 노래와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매미들이 매달린 나무들 옆으로 호랑이 한 마리가 영문을 몰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자못 바보 같았다.
“내 분명 토끼를 잡았거늘 왜 보이지 않는가?”
호랑이는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토끼의 짧고 하얀 털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앉아 생각하던 호랑이는 고개를 휘휘 젓더니 일어나 길을 나섰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내가 헛것을 본 모양이로군.”
산길을 따라 걸어가는 호랑이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그 넓은 등에 붙어있던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 뭉치 또한 점점 멀어졌다.
신묘 토끼였다.
‘이거 큰일이로군. 호랑이 아가리를 피하려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말았으니…….’
호랑이는 하염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자신의 등에 신묘한 토끼 한 마리가 업힌 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