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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하나에 마음이 무너졌다

말없이 전해진 남편의 진짜 사랑에 대하여

by 담연

“당신, 요즘 무슨 일 있어? 표정이 계속 어두워서 걱정돼.”


며칠 전부터 남편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건네도 침묵하거나, 엉뚱한 화제로 이야기를 돌리곤 했다.
그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고, 내 마음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어젯밤, 결국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사실 그 순간, 나는 어떤 대답이든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남편은 며칠째 앓던 감기, 새롭게 맡은 직책의 부담,
늘어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처음엔 그런 일들이 왜 나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줬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마도 지금의 남편보다 훨씬 예민하게 굴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인 사람이라 여겼지만,
그의 시선에서 나를 돌아보니 나의 미숙함이 또렷이 보였다.


남편은 말을 이었다.
그가 말을 아꼈던 건, 연애 시절 내 감수성이 자주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 했다.
다시는 나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오히려 침묵을 택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 침묵 속에 담긴 배려를 이해할 수 있었다.


대화는 우리 가족의 미래로 흘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학교 근처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비용이 걸림돌이었다.
남편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절약 방법과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험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내 보험료를 15년 안에 납부하도록 설계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자신이 나보다 나이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은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나와 아이가 보험료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해 둔 것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집을 사던 해의 어느 저녁이 떠올랐다.
그날 그는 대출금 상환을 대비한 보험에 가입했다고 했고,
주식 내역과 보험 정보를 정리해 놓았다고 조용히 알려주었다.


당시엔 깊이 새기지 못하고 흘려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행동 속에는
우리 가족을 향한 묵직한 책임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편과 함께할수록, 나는 나의 부족함을 더 절실히 느낀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조용한 사랑 속에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다.




당신이 준비해온 모든 건 사랑이었다는 걸 알아.

고맙고, 든든해.

하지만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당신이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는 거야.

당신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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