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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라이팅, 엄마의 취향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2013년생 엘사, 2023년생 우리 딸.사랑일까, 주입일까

by 담연

엘사를 좋아하는 건, 정말 아이의 선택일까?


2023년생인 우리 딸은 사실 엘사를 알 리가 없다.
엘사는 2013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고, 그 인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캐릭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집엔 엘사 옷, 엘사 책, 엘사 인형, 엘사 스티커북,
그리고 엘사 크록스까지… 없는 게 없게 되었다.


시작은 소박했다.
임신 중기 무렵, 남편의 사촌동생이
그녀의 딸이 1~3살 때 입었던 옷들을 물려주었고,
그 옷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원피스가 있었다.
커다란 엘사 프린팅이 있는 민소매 원피스.
아이가 돌쯤 되어야 입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아이가 옷장 속 그 원피스를 입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9개월 무렵, 아직은 옷자락에 발이 걸릴까 조심스러웠지만
엘사 원피스를 입혀보았다.
생각보다 아이는 그 옷을 무척 좋아했다.
아마 그때부터 원피스라는 아이템 자체를 좋아하기 시작한 듯했다.


13개월쯤, 폭풍 성장한 아이 덕분에
이제 엘사 원피스는 발목까지 예쁘게 내려오는 길이가 되었다.
크게 그려진 엘사 캐릭터는 성인 눈엔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이에게는 너무나 잘 어울리고, 귀엽고 깜찍했다.


그 무렵부터였을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엘사’라는 캐릭터를 인지시키기 시작했다.
“이 옷에 그려진 사람이 티비에도 나오는 엘사야~”
“쟤도 엘사야, 똑같지?”
말하자면 ‘엘사 라이팅’이 시작된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게 엘사 사운드북을 선물 받았다.
버튼을 누르면 겨울왕국 노래가 나오고,
그림과 가사가 함께 있는 책이었다.
아이는 열심히 버튼을 누르고, 책장을 넘기며
또 하나의 엘사 세계를 경험해갔다.


다음은 크록스였다.
어느 쇼핑몰에서 우연히 들른 매장에서
반짝이는 파란색 글리터 슬리퍼를 본 아이는
단번에 그것을 집어 들고 신겨달라며 떼를 썼다.
엘사 그림은 없었지만, 그 반짝임은 분명 겨울왕국을 떠올리게 했다.
그 순간, 이미 마음이 기운 나는 아기의 손을 핑계로
못 이기는 척 그 크록스를 사주었다.
그렇게 68달러짜리 엘사 감성의 슬리퍼는
지금까지도 외출할 때마다 아이가 직접 고르는 최애템이 되었다.


그 이후로는 눈 깜짝할 사이였다.
아키하바라에서 사온 엘사 인형,
타오바오에서 구매한 엘사 잠옷,
엘사 책, 엘사 머리띠, 그리고 엘사 자석 스티커북까지.
이제는 티비에서 겨울왕국을 틀기만 해도
“꺅!” 하고 소리를 지르는 19개월 아기가 되었다.


그런 딸아이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이가 좋아하는 ‘엘사’라는 존재는,
정말 아이 스스로 선택한 걸까?
아니면 내가 조금씩 심어온 결과일까?


좋아하는 것, 끌리는 것,
이 작은 취향 하나에도 부모의 영향이 녹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섬뜩하고, 동시에 경이롭다.
나는 단순히 예뻐 보여서, 혹은 좋아할 것 같아서
‘선택’한 것들이었지만,
그것이 아이에게는 ‘세상과 만나는 첫 취향’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앞으로도 나는
좋은 의도로 아이에게 많은 것들을 선택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들이 정말 아이 자신의 것이 되기 위해선
나는 늘 조심하고, 한 걸음 물러나 있을 필요가 있다는 걸 배운다.


내가 이끄는 손이,
아이의 진짜 꿈과 가능성을 덮어버리는 일이 없기를.
그런 바람과 함께, 오늘도 조심스럽게 엄마의 하루를 살아간다.

앨사를 알 리 없는 아기가, 어쩌다 이렇게 엘사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시작은 이 원피스 한 벌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선택을 대신하게 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 선택들이 아이의 가능성을 넓히는 길이 되기를,
무의식의 울타리가 되지 않기를
오늘도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혹시 당신도,
무심코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요?
그 마음부터 함께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또 다른 이야기,
저희 집의 조용한 가족 '니젤'에 대해 궁금하다면"

[우리집 필리피노 언니, 니젤 이야기 보러가기](https://brunch.co.kr/@72538f848ec8460/3)


“아이와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조심스레 배워가는 엄마의 마음."

[INFJ 엄마로 살아가기 – 감정에 귀 기울이는 육아](https://brunch.co.kr/@72538f848ec8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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