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지도 모를 그녀를 위해, 마음을 싸는 중입니다
8월이 기다려지는 이유
우리 집 헬퍼 언니, 니젤이 2년 계약을 채우고 곧 2주간의 휴가를 떠난다.
그 시기가 다가오면 나는 묘하게 설레고,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싱가포르에서는 헬퍼와의 기본 계약 기간이 2년인데,
재계약을 할 경우 고용주는 2주간의 유급휴가와 왕복 항공권을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는 헬퍼가 가족을 만나고 재충전할 수 있도록 보장된 정식 제도다.
가끔 니젤에게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예전에 그녀가 언젠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꿈을 털어놓았을 때,
정말 진지하게 내 주변에 괜찮은 미혼 남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도 있다.
문득 외가 쪽 40대 사촌 오빠가 떠올랐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지만, 그래도 혼자인 걸로는 조건이 맞는다.
‘한번 소개라도 시켜볼까?’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했다.
하지만 이내, 바쁜 자영업자이고 한국말도 못하는 니젤에게 괜히 고생만 시키는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을 접었다.
(사실, 사촌오빠의 취향은 아예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나는 니젤이 살림도 야무지고, 늘 밝은 얼굴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사람이라
누가 봐도 ‘최고의 신부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니젤의 어머니가 필리핀에서 혼자 지내신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싱가포르로 초대해서 우리 집에서 머무시게 하고, 함께 여행도 시켜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도 딸로서 엄마와 함께한 여행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녀의 엄마에게도 그런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곧, 혹시 이런 내 마음이 오히려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내가 너무 앞서가는 건 아닐까 싶어서 살짝 물러섰다.
그런 생각들 사이로, 니젤의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자
나는 문득 내 방 옷장을 열어보았다.
입지 않는 예쁜 옷들이 꽤 많았다.
그녀에게 여자 조카들과 여동생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이 옷도, 저 옷도 다 싸서 보내줘야지.”
거기에 한국 화장품도 몇 가지 담고, 맛있는 초콜릿도 주문할 생각이다.
아참, 그녀는 캐리어가 없으니까 내가 쓰던 캐리어도 빌려줘야겠다.
이 모든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선물을 받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고 상상하는 그 시간이
어쩌면 더 설레고 기쁜 것 같다.
‘좋아해줄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 괜히 혼자 웃음이 난다.
니젤은 8월에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날 수도 있고,
가족과의 행복한 유급휴가를 보내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계속 우리와 함께해줬으면 좋겠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니젤은 분명 다시 돌아올 거야.”
하는 작은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다.
더 잘해줘야지.
가족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더 따뜻하게 감싸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8월이, 그렇게 기다려진다.
이 인연은, 정말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로또 같은 행운이었다.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이렇게 오래, 깊이, 그리고 따뜻하게 도움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녀는 단순한 ‘헬퍼’가 아니라,
낯선 땅에서 나와 우리 가족을 지탱해준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삶이 때때로 버거울 때,
그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다.
당연하지 않은 이 고마움을,
오늘은 꼭 마음껏 표현해보길.
당신의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을, 그리고 당신의 하루를 더 따뜻하게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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