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나는 아이와 함께 사회에 조금씩 나아간다
싱가포르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고, 출산휴가도 4개월로 제도적 지원이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비교적 이른 시기인 4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어린이집이나 센터에 보내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두 돌 이후, 대략 30개월쯤에 기관에 보내는 걸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사회적 경험이 너무 부족한 채로 기관에 들어가면, 아이가 낯가림이 심해지지 않을까?
그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일주일에 한 번’ 집 근처 콘도 안에서 진행되는 음악 수업이었다.
18~24개월 또래 아기들이 모여 1시간 정도 함께하는 소그룹 뮤직클래스.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악기, 리듬, 동요를 통해
아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몸을 움직이며, 소리를 익히는 시간이다.
우리 아이에게는 첫 ‘사회 생활’이자,
나에게는 첫 ‘준비된 거리두기’이기도 하다.
수업은 엄마와 함께 참여하는 형식이고, 매주 돌아가며 자원한 엄마의 집에서 열린다.
다른 집은 어떤 분위기일까,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처음엔 단순히 궁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수업은 나에게 ‘음악을 매개로 한 사회적 경험’이 되어가고 있다.
보통 5~6쌍의 엄마와 아이가 모이고, 그중 나는 유일한 한국인.
대부분은 서양인 엄마들이다.
한국의 문화센터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지만,
이곳에 오는 엄마들은 어딘가 선명하게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손톱보다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손으로 악기를 건네고,
하얀 바지에 짧은 스커트를 입은 채 바닥에 편하게 앉아 수업에 참여한다.
엄마로서의 역할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동시에 놓치지 않는 모습.
모두가 헬퍼를 고용하고 있으니, 육아복장이 꼭 기능적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서양 문화 특유의 밝음과 자신감도 인상적이다.
선생님의 노래에 맞춰 손을 흔들고, 율동을 하고, 아이의 눈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어쩌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익힌 ‘사회적 표현력’처럼 느껴진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나는 나름 열심히 스몰토크도 해보지만,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속이 조금 허해진다.
INFJ인 나는, 겉으로는 자연스러워 보여도
속으론 늘 낯설고, 약간은 긴장 상태에 머문다.
왜 나는 아이의 수업에 가기도 전에 마음이 조여오는 걸까.
그리고 왜 돌아오는 길엔, 기가 다 빠진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는 걸까.
그럼에도 이 수업을 계속 다니는 이유는 분명하다.
수업은 너무 알차고, 선생님은 늘 한결같이 따뜻하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아이의 여섯 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늘 그렇듯 수업이 시작되면 선생님은 각자에게 악기를 하나씩 건네주신다.
그럴 때마다 우리 아이는 깜짝 놀라 나에게 달려 안기곤 했다.
선생님이 가까이 오는 그 순간조차 아직은 두려웠던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선뜻 악기를 받아들고 소리를 내면 좋을 텐데,
괜스레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던 지난 다섯 번의 수업.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선생님이 악기를 건네주시기도 전에,
아이 스스로 내 품을 벗어나 선생님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앉았다.
그리고 작은 손으로 트라이앵글 비터를 받아들고는,
땡, 땡, 땡—
짧고 또렷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울리는 순간,
내 마음도 함께 울렸다.
그 작은 변화를 본 다른 엄마들도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악기를 잡았네요!”
그 한마디에 얼굴이 환해지는 걸 숨길 수 없었다.
기특하고, 놀랍고, 참 기뻤다.
이토록 작은 변화 하나가
내 심장을 이렇게 세게 뛰게 만들 줄이야.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성장의 순간을 함께 겪고,
얼마나 더 자주 이런 감정을 마주하게 될까.
그 생각을 하니,
나도 조금 더 단단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나도 함께 성숙해질 수 있도록—
서툴지만, 꾸준히.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트라이앵글을 울리던 날,
나는 그 짧은 소리에 마음이 찡 하고 울렸다.
아주 작고 부드러운 변화들이
이렇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
여러분도 알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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