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을 이어가는 어른으로
아이를 키우며 문득문득, 오래된 기억이 하나씩 떠오른다.
기억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익숙한 장면들이다.
아기와 산책을 나갔을 때, 작은 손에 쥐어준 과자를 다 먹고 나면
아기는 그 남은 봉지를 아무렇지 않게 내게 건넨다.
나는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물을 마시다 말고 내미는 물병도, 손에 들고 있던 낱말카드도, 장난감도.
나는 요즘, 무언가를 받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걸 담는 서랍처럼.
그리고 문득,
나도 그렇게 자랐다는 걸 떠올린다.
정확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나는 쓰레기가 생기면 자연스레 엄마에게 건넸고,
엄마는 그걸 늘 아무 말 없이 받아주셨다.
그땐 그게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인지 몰랐다.
아빠도 내 짐을 들어주시고, 엄마도 내 손을 비워주시고,
그 모든 순간은 당연한 줄만 알았다.
이제 그 사랑을
내가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면,
마음 한편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요즘 자주 드는 또 하나의 생각.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
내 욕심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 아이에게 가능한 한 좋은 것을 주고 싶다.
보송보송한 기저귀, 자극 없는 물티슈, 유모차 액세서리,
소근육 발달 장난감, 낱말카드, 그림책…
안 사는 게 없다.
그 모든 것이 다 ‘돈’이라는 걸 실감하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그리고 또,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집.
엄마가 옷가게에서 나에게 옷을 사주려 했는데
현금이 모자랐던 기억.
슈퍼에 가도,
나는 내가 정말 먹고 싶은 것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무언가 갖고 싶어도,
그저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던 시절.
그땐 몰랐지만,
이런 내 눈치를 보고 있던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내 딸을 이렇게라도 더 풍족하게 키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겪었던 결핍을 내 아이에게는 되풀이하지 않게 하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를 돌봐주시던 이모도 떠오른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자신의 아들까지
셋을 긴 시간 돌보아주신 이모.
이모 집 형편도 넉넉하진 않았을 텐데,
우리를 위해 늘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셨다.
특히 딸기 철이 오면,
딸기를 우유에 듬뿍 넣어 갈아 딸기 스무디를 만들어주셨다.
이모의 딸기 스무디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했다.
나는 늘 이모 집에 가면
‘오늘도 딸기 주스를 해주시려나’
기다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딸기 스무디 하나에도
이모의 작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딸기를 자기 아들에게만 먹이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를 먼저 챙겨주셨던 그 마음.
돌이켜보면
그 사랑이 너무 고맙고,
지금의 나는 그 마음에 빚을 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젠가
내게도 조카가 생긴다면,
나는 그런 고모가 되고 싶다.
이모처럼,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아낌없이 퍼주는 그런 어른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가 자라온 기억과 사랑을 다시 꺼내어 보는 일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로 살아가며
그 시절의 나도, 나를 키워주었던 이들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