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우리를 인생의 작가로 만든다.
고난은 어떻게 유익이 되는가?
스토리가 된다. 소설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도 고난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고난과 문제가 없으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난은 좋은 소재일뿐더러 나를 더 강하게 한다.
니체가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맹자왈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게 하고, 그 살과 뼈를 고달프게 하며, 그 신체와 피부를 주리게 하고, 그 몸을 궁핍하게 하며, 그가 하는 일마다 잘못되고 뒤틀리게 하는데, 이는 그 사람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격을 강인하게 함으로써 그의 부족한 능력을 키워주려는 것이다.”[출처] ■ 하늘이 그 사람을 크게 쓰고자 할 때에는|작성자 다사랑
굳이 고난을 초청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나에게로 온다면 그것을 이제 수용하기 바란다. 지혜롭다면 고난을 어떻게 활용할지 내 삶의 풍성한 이야기의 재료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은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는 유익이다. 부디 피상적인 위로의 말이 아니라 현실에 근거한 깨달음이 되길 스스로 바라본다.
현실은 엉망진창 일지라도 과정이다. 지금의 엉망진창을 괴롭지만 즐긴다. 곧 그것을 회고할 날이 올 것임을 안다. 고통스러운 과거는 미래의 나에게 특별한 스토리가 된다. 이제 즐길 일만 남았다. 꾸준한 독서와 사고를 통해 습관을 고치는 것도 어느 순간 가능하게 된다.
인생의 맛은 풍성함에 있다. 달고 짜고 쓰고 맵고 여러 가지 맛을 즐기게 되면 한 가지 맛보다 풍성한 맛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쓴 커피를 즐겨 마시듯 인생의 쓴맛도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어린시절 쓴약과 같은 커피를 즐기게 된 날부터 달콤한 인생뿐 아니라 씁쓸한 인생의 맛도 풍성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생의 단맛만을 쫓게 되지 않았다.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사디스트 아니면 마조히스트냐고? 인생의 완성은 자기를 깨는 과정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깨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는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될 자기를 깨는 고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독서로부터 시작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을까? 나의 고질적인 시간 낭비, 나쁜 생활습관과 식습관 등이 나도 모르게 변화되고 있음을 문득 느끼게 되엇다. 지금까지는 내 몸과 정신에 좋지 않은 것들을 선택하는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몸이 편한 대로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뇌의 신경회로의 반응구조가 달라진 것일까? 최근 김주환 교수의 강의를 많이 듣고 있는데, 편도체가 안정화되고 전전두피질의 기능이 활성화된 것일까? 이제는 몸이 긴장하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판단이 되살아 남을 느낀다.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는 쪽으로 마음이 더 가게 된다. 비록 고난일지라도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독서의 유익에 관하여서는 대다수 사람이 이론으로는 알고 있다. 나 역시 그 이유를 매우 궁금해 해 왔다. 책을 읽는다고 어떻게 삶이 변할까? 그런데 그것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독서는 뇌의 신경회로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나를 트랜스폼 하는 거북이 같은 여정을 keeping going 한다.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나의 어두웠던 과거가 나의 성장에 큰 재료가 되고 있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다가왔다. 이전에 부담스럽고 부끄럽기만 했던 것이 이제 나의 보물이 될 수도 있다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많은 책들이 그렇게 말한다. 너는 네가 경험한 인생의 재료들, 특히 아팠던 것들을 통해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너의 눈물과 고통으로 인해 더욱 풍성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오늘고 스스로를 독서 임상 실험에 투입시킨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메커니즘을 더 쉽게 설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