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 것!
3일 전 건강 검진 전날이었다.
스케줄이 꼬여 밤늦게까지 근무를 한 탓에 자정 무렵 집에 도착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해서 장을 비워내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설사약을 먹고 기척이 없어 잠이 들어버렸다. 새벽 3시쯤 되었나 배에서 신호가 와서 욕실로 향했고 변기에 앉아 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구토가 일고 호흡이 어려워지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그러고는 욕실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차가운 욕실 바닥에서.. 몇 분쯤 지났을까 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왔다.
뉴스에 보면 혼자 사는 사람들 중 집에서 특히 욕실에서 쓰러져 명을 달리하였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수년 전쯤 환절기에 수면 중 호흡곤란 증세가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어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 또 이렇게 호흡이 안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숨이 막히는 고통도 무서웠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수면 중 복용한 대장 내시경 약은 숨이 멎을 듯한 고통과 함께 의식을 앗아가 버렸고 덕분에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반백살, 이제 꺾어진 나이, 날이 갈수록 몸은 쇄잔해간다. 날씨가 추워지니 더욱 스산해지는 마음이다. 언제고 불려 갈 수 있는데. 보장된 남은 시간은 없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예전 중년들이 마음만은 청춘이다라고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살만큼 산사람들이 진짜로 그런 마음일까? 왜 나이는 몸으로만 먹고 마음으로는 먹기 어려운 것일까 의구심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고백하자면 나도 진짜로 마음만은 청춘이다. 아직 꿈을 꾸는 어린아이와 같은데.. 시간은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
청춘은 소중한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중년들이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할 때 그것은 꿈을 꾸지만 시도해보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소회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 마음속 깊숙이 담아둔 것을 차마 도전해 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생활과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과 맞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나이 되도록 마음의 나이는 청춘에 머물고 있다. 특히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금 당장 사직서를 던질 수 없는 상황이기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줄 것! 나 외의 존재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것!
타인에 시선에 의해 주조된 비슷비슷한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로만 침잠할 것이 아니라 밖으로 밖으로 나가볼 것! 눈치 안 보고 나를 먼저 챙길 용기, 어제의 나로서는 엄두 내지 못한 표현을 해보는 용기, 지금까지의 나를 거부하고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보듬어 주고 동시에 순수하고 진솔하게 내 안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시도해 보기!
모든 존재와 활동은 그 자체로의 순전한 목적이 있는 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판단의 영역이 아니다. 결과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성공 실패를 떠나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더군다나 실패는 우리에게 더 큰 영감을 준다.
중년이 되니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지금까지는 시간을 희생하고 수단 삼아 다른 것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년기에는 그 반대로 시간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시간, 생각, 태도, 관계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시간을 담보 삼아 다른 것을 구하려는 미련함을 버리고 현재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깊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 것을 스스로에게 명했다.
그날 차가운 욕실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두려움과 걱정 또한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듯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문득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명문이 떠올랐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의 교훈은
현재를 살 것! 그리고 대장내시경 약을 먹고 절대로 잠들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