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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좀 아는 언니 Jun 13. 2024

수영하면서 철학하기 2

초보 체육인의 소고  

수영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 극심한 몸치라서 한 바퀴 도는 것이 힘들지만 빠지지 않고  도장을 찍는다. 수영장에 꿀이라도 발라놨다 싶지만, 더한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수영장에서는 사유가 깊어지고 철학자가 된다.


수영장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한다. 10대 꿈나무부터 80대 노장까지 저마다의 페이스로 물살을 가른다. 여러 바퀴째 쉬지 않고 왕복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아직도 나는 자유형 한 바퀴 돌고 숨을 골라야 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영장 모서리에서 있다 보면 옆 레인의 파워풀한 접영의 물살과도 같이 깊은 사색의 물결이 밀려온다. 힘든 수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뼈를 때리지만,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수영장은 뭍에서는 할 수 없는 사유의 최적의 장소이다.




호흡에 집중하고 물에 떠서 움직일 때 나의 뇌는 이상 반응을 일으킨다.  특히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사고,  몰입으로 대변되는 현재에 집중하기, 과정중심의 사고에 대한 사유가 늘어가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뇌의 영역인 사고, 감정의 변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운동을 하게 되면 뇌가소성에 따라 뇌세포가 증식, 연결이 강화되고 생리적인 반응으로 뇌의 혈류량과 호르몬이 증가하고 뇌와 신체 기능이 향상되어 인지와 정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파민, 세로토닌 호르몬이 활성화되어 스트레스 억제 반응을 일으키고 엔도르핀이 행복감을 경험하게 한다고 한다. 기억, 사고, 조절 능력과 부교감 신경이 힘을 키워, 인체의 길항작용이 대립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시너지를 일으킨다고 알고 있다. 운동이 신체에 주는 유익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 운동이 사유와 관점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의 삶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같은 상황이라도 개인별로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고 그에 따라 행동도 달리 한다. 이러한 개인적 신념에 문제는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 인지심리학의 영역이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자기 주도권과 자기 결정력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에도 회피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직면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이다. 즉 인지적 왜곡을 피하고 적응력이 개선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운동과 어떤 관련이 있길래 수영할 때 예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유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인지능력을 주관하는 뇌는 체계는 실행제어 네트워크와 디폴트모드 네트워크로 나눈다고 한다. 실행제어 네트워크는 기억, 조절, 유연성 등 인지적 과정을 담당하는데 어떤 목표나 과제를 집중해서 수행할 때 활성화 되는 영역이고 반대로 집중하지 않을 때, 흔히 멍 때린다고 할 때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주관한다고 한다. 즉 인간은 실행제어 네트워크와 디폴트모드 네트워크를 오가며 과업에 몰두하거나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디폴트모드네트워크는  현재-자신에 집중하기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과거와 미래 혹은 환경에 주의를 분산하는 부정적 상황과 더불어 역으로 생각하면 뇌가 초기화돼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는 긍정적 기제라고도 말한다.    


운동은 이 두 가지 네트워크의 작용에 영향을 준다. 두 체계가 서로 대립하여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과제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고 실행 제어 네트워크 즉, 단기기억, 억제 조절능력, 인지적 유연성이 유지된다고 한다.


나의 몸은 정직하다. 사람에 따라 그 기울기는 다르겠지만 운동량과 그에 따른 결과는 비례한다. 즉 나의 근육이 기억하는 만큼의 진전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숨 가쁨과 근육통을 견뎌내야 한다. 종국에는 조금씩 달라지는 속도를 느끼며 나도 젬병은 아니었구나 하는 지극히 상식 적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운동은 기본적으로 좋은 호르몬을 분출한다. 그런데 기분 좋음을 넘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뇌가 돕는다고 하는 것이 경이롭다.  이것이 수영을 하면서 철학이 가능한 이유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발달되고 진화되었을까? 다른 방향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법 한데 말이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믿고 한 발짝씩 앞으로 전진할 때 하늘은 그를 돕는다. 즉 우리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스스로를 깨는 혁명적 사건임과 동시에 더 나은 종의 기원을 위한 인류애를 발휘하는 것이다.

     

철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의심 없이 한걸음 내딛는 것이다.  비록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뇌는 그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티끌만 하지만 역사에 남게 된다.    


몸과 마음이 궁금해진 백수는 오늘도 체육관에서 도서관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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