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11개월 정도를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는 적응한 듯하다.
어디에서 뭘 사서 어떤 요리를 해서 무얼 먹을까는
매일 고민하는 일상이긴 하지만, 처음처럼 막연하기보다는 그림이 그려지고, 정해진 루틴이 있다.
냉장고가 비었네?! 오늘 먹을 게 없네?! 싶을 때 나의 장보기 일상을 공유한다.
구르가온에 사는 소소한 한국 주부의 평범한 장보기 일상.
ARA MANDI
인도에는 Mandi라는 그로서리 샵들이 있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다만 야채, 과일이 실온에 그냥 나와있기 때문에 여름에 방문하면 수많은 파리떼를 맞닥뜨리거나, 더위에 축 처진 슬퍼 보이는 야채를 만날 위험이 있다.
다행히 요즘은 날이 선선해져서 야채들이 생기를 되찾아 자주 방문 중이다.
여러 Mandi를 다녀봤는데, 물건의 선택지가 많은 Mandi Mandi Mart나 가장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Kunaic Mandi Mart도 있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Ara Mandi를 제일 많이 찾는다.
집에서 사우스 포인트몰을 차로 가는데 그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나의 장보기 루트 사정권 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장 한 번 보려면 가야 하는 가게들이 많은데 시간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고 싶은 (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바람이 녹아져 있는 동선이다.
한국에서처럼 이마트나 동네 마트 한 번으로 장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인도는 내가 사고자 하는 것들이 각 마트 별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단 한 곳을 방문한다고 장보기가 끝나질 않는다.
내 설명을 듣고,
"아줌마들이 시간이 남아도는구먼~"하던 내 동생도 인도에서 요리를 해보겠다고 장 보다가 어이없어했다.
왜 한 곳에서 장을 볼 수가 없냐고.....
아라 만디를 찾으면 외부에 야채 코너가 맞이해 준다.
여름에 이곳에 얼마나 많은 파리가 있는지 모른다.
뜨거운 더위에 야채들이 시시각각 죽어가서 사진에 보이는 황토색 포대기를 야채마다 덮고는 물을 엄청 뿌려댄다.
그래도 이미 시들한 야채들이 더위에 승복하는 데 이겨낼 재간이 없다.
요리에 많이 쓰이는 감자, 양파, 파, 마늘을 자주 구매하고
양배추, 당근, 토마토, 가지, 무, 시금치를 종종 구매해서 닭갈비, 야채주스, 가지 요리, 무생채, 된장국을 끓이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초당 옥수수!
나는 여전히 강원도 찰 옥수수가 그립긴 하지만, 초당 옥수수에 입맛을 길들이고 있다.
사진이 의외로 깨끗하게 나왔다. 사진이 거짓말을 하네.....
실제 좀 더 어두컴컴하고, 먼지가 많다.
아라 만디를 설명할 때 내가 주로 하는 묘사.
자, 세상이 멸망을 했어.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물건을 살 곳이 마땅치 않지.
그때 폐허가 된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가게..
물건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고, 살 것들이 마땅치가 않고, 딱히 살 게 없지만 여러 물품들을 구색 맞추기로 갖다 놓은 거야. 그런데 다행히 내가 필요한 감자, 양파가 있고, 애들이 너무 먹고 싶어 하는 초콜릿이 먼지를 툭툭 털어내면 그나마 유통기한이 남아서 사서 먹을 수가 있는 거지.
디스토피아 세상 속에서 단 하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아라 만디야.
망고 철일 때, 수많은 가게 중에서 망고 가격이 제일 저렴했기에 여름철 내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
야채 과일을 사기 위해 제일 먼저 찾는 곳이지만
그곳을 갈 때마다 디스토피아 속 도피처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어떤 마음인 걸까.
인도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 순간을 감사하고, 즐기고 있지만
사실상 엄청난 대기오염과 안 좋은 수질 상태로 인해 자주 장염에 시달리면서
내 진짜 속마음은
인도를 견디고 있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도를 매 순간 맞닥뜨리면서, 내가 여기서 <인도에서 살아남기>를 해내고 있다는 것을 아라만디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저 내 동선 상 가장 저렴하게 야채와 과일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기에
단순하게 그곳을 그냥 갈 뿐일지도.
나의 엉뚱한 상상력이 그저 나를 지구 최후의 사람으로 가정하여, 아라 만디를 찾는 것을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만들어 내며, 영화나 소설 속 작은 에피소드로 승화시키는 건지도...
사우스 포인트 몰. 이치바 - 에피큐어 - 실라마트
몰에 들어서서 내가 제일 먼저 찾는 세 마트.
한국 마트인 실라와 에피큐어, 일본 마트인 이치바
실라마트에서 쌀떡과 두부를 자주 구매하고, 이치바에서 숙주와 계란을 자주 산다.
에피큐어에선 대패 삼겹살...
한국쌀이 똑 떨어진 이후에는 인도 sticky rice라는 GRM을 먹고 있는데
아무래도 한국 쌀과는 달리 통통하지도 찰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적응해서 잘 먹고 있다.
아시아 마트에서 쌀 도정 일자를 확인하고 그때그때 가장 최신의 쌀로 5KG로 2-3개 구매한다.
위층으로 올라와 내가 자주 찾는 르 마르쉐!
주로 인도 가공식품을 사거나(대개 블링킷이나 빅바스켓으로 배달을 주로 하지만)
정육점 코너에서 닭을 사는 편이다.
냉동식품을 배달어플로 구매하면 녹아오는 경우가 많아 냉동 식품의 경우도 마르쉐에서 살 때가 많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일반 마트에서 신선한 상태로 사기 어려운 인도인만큼 우리집의 주 식재료가 되어주는 닭!
닭 다리살, 닭가슴살, 닭다리, 홀 치킨 등을 주로 구매해서
후라이드 치킨, 치킨가스, 찜닭, 닭갈비, 닭볶음탕, 삼계탕, 닭다리 구이 등 닭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정복하는 중...
아무래도 닭과 가공식품을 많이 사다 보니 다른 마트보다 구매액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계산대에 보면 기프트카드 구매액에 따라 5%, 10%, 15% 할인을 적용해 기프트카드를 구매해 사용할 수 있다.
마르쉐 사용액이 많다면 기프트 카드 구매를 추천한다.
또한 인도에 대형 프랜차이즈나 매장을 이용할 때엔 언제나 전화번호를 등록하여 회원으로서의 혜택을 누리는 게 좋다.
마르쉐의 경우, 회원 가입을 한 후 구매시마다 내 번호 입력해 달라고 요청하고, 전화번호를 일일이 불러주는 수고를 하면 Loyalty points가 쌓인다.
적립율이 엄청나진 않지만, 매 구매시마다 포인트 적립을 챙기면 '티끌 모아 티끌'이긴 해도, 소소한 할인을 맛보는 쇼핑의 재미가 있다.
포인트 사용 또한 스스로 챙겨야 한다.
포인트 확인하고, 차감 가능하면 오늘 결제에 적용해 달라고 요청해야 포인트를 쓸 수 있다.
소비자 스스로 챙겨야 혜택을 챙길 수 있는 구조.
나의 오프라인 장보기는 대략 한 시간가량,
시간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서둘러도 대략 다섯 군데를 돌며 장을 돌다 보면 그 정도 시간이 소모된다.
이 마저도 귀찮을 때면
배달 어플로 가능한 물품들만 배달시켜 한 끼, 한 끼 채워나가기도 하지만
오프라인 장보기를 한 날에 먹거리도 풍성해지고, 식탁도 다양해지기 마련이라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인도에도 많은 식재료들이 있는데,
그 와중에 나와 가족의 입맛에 맞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도
보물찾기 하는 마냥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긴 했다.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찾아낸 식재료들로
가족의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가끔은
한국의 숯불 돼지갈비의 향
철판 닭갈비의 매콤함
삼겹살의 육즙이
향수병처럼 들이닥쳐
온몸을 휘감고
한국을
한국의 먹거리를
그리워하곤 한다.
4학년 아이의 한국 위시 리스트가
먹거리로 빼곡히 채워진 걸 보며
붕어 싸만코, 빵또아 한국 아이스크림을 먹고
길거리 붕어빵을 사 먹고
편의점에서 껌, 밀크 캐러멜, 꼬북칩을 사 먹겠다는
아이의 소소한 희망 사항들을 보며
아... 우리가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인도에 살고 있구나를 새삼 실감한다.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인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밀크캐러멜의 달콤함만큼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상의 즐거움을 더 찾아봐야겠다.
그래서 인도에서의 4년이 지나고 한국을 갔을 때
인도에서의 어떤 걸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기를...
이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나 나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