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서 아이들이 고립되었다
서울에 집중 호우가 쏟아진 날 나와 수업을 끝낸 아이들이 오후 늦게 대치동으로 떠났다. 대치동 학원에서 사탐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종일 내리던 비는 저녁이 되어 더 굵어졌다. 몇 대의 택시에 실려간 아이들을 걱정할 새도 없이 나는 남은 수업을 했고 밤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한밤 뉴스를 보고 알았다. 강남이 물바다가 되었다는 사실. 학원은 정전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이들은 학원 밖으로 나왔지만 이미 도로에 가득 차오른 물은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이를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재난 앞에 아이들은 무기력했지만 늘 자신들의 방패막이되어준 엄마도 아빠도 그날만은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 같이 있는 친구들의 손을 잡고, 울면서 아이들은 집이 있는 서초로, 청담으로 걸어갔고 새벽에나 집에 도착한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은 재난영화에서나 보는 일들을 몸으로 겪었고 이틀을 앓아누웠다. 강남의 여유로운 가정에서 자라 자기들이 사는 세상은 안온하고 안전할 거라 믿었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가 있어도 늘 부모님이 앞장서서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과 꺼지지 않는 산불, 미국 데스벨리와 라스베이거스를 덮친 호우를 보며 선생님, 지구가 정말 많이 아픈가 봐요라고 걱정스럽게 말하곤 했지만 그들의 일은 아니었다. 위험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는 말도 이제는 더 이상 맞는 말이 아니었다. 이번의 폭우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로 그들을 내몰았다. 그들이 걸은 그날 가까운 곳에서 갑작스럽게 불어난 빗물 때문에 맨홀로 빨려 들어가 사망한 사람들이 나온 뉴스를 보고 아이들은 공포에 질렸다. 더 이상 자신을 지켜줄 존재가 없고 스스로 그 모든 것을 각자도생으로 헤쳐 가야 한다는 사실에 마주 섰다. 어려서부터 꽉 찬 스케줄을 반복하며 대치동 키즈로 살던 당연한 생활은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현타가 세게 왔다. 맘 카페는 난리가 났다.
울리히 벡은 1986년 위험사회라는 용어로 우리 문명이 직면한 위기를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위험사회는 기후재앙 같은 자연적 현상보다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이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태가 가져온 경고의 파급효과였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위험은 민주적이라는 말은 지구의 어떤 사람도 위험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위험의 연대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위험 사회 이전에는 불안사회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재난 사회라는 말을 쓴다. 이는 너무 늦은 상태를 말한다. 위험사회는 사회 구성원의 자각과 시스템의 개선으로 조종간을 잘 작동하여 위험을 피해 갈 가능성이 있는 사회지만 재난 사회는 몰락의 공포가 구성원을 삼키는 경우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이미 재난 사회로 들어선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깊어진다. 재난이 일상이 되는 세상을 헤쳐갈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틀을 앓아누웠던 아이들은 다시 일어났다. 곧 일상으로 돌아오겠지. 그러나 이미 그들은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일 것이다. 몇 시간 동안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견디며 천지분간도 되지 않는 길을 스스로 헤쳐 온 아이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