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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Oct 26. 2022

조선 최고의 금서- 채수의 설공찬전

조선 최고의 금서가 채수의 <설공찬전>이다. 중종실록에는 채수의 설공찬전을 놓고 조정에서 엄청난 파문이 일어났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채수(蔡壽)가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지었는데, 내용이 모두 화복(禍福)이 윤회(輪廻)한다는 논설로, 매우 요망(妖妄)한 것인데 중외(中外)가 현혹되어 믿고서, 문자(文字)로 옮기거나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킵니다. 부(府)에서 마땅히 행이(行移)하여 거두어들이겠으나, 혹 거두어들이지 않거나 뒤에 발견되면, 죄로 다스려야 합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설공찬전은 불타고, 채수는 파직당하고 만다. 현역 임금과 반정 세력을 비판한 내용이다 보니 금서 중의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 영원히 사라질 뻔한 책은 명종 대의 이문건이 자신의 저서 종이 뒷면에 몰래 필사한 것이 1997년 우연히 발견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었다. 조선판 엑소시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면적으로 귀신 이야기다. 순창에 살던 설충란에게 공찬이란 아들이 있었는데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 원혼이 설충란의 큰 형 설충수의 아들인 설공침에게 들어간다. 멀쩡하던 아들이 귀신이 들려 죽게 되자 설충수는 혼을 몰아내려고 무당 김석산을 불러들인다. 복숭아나무 가지, 새끼줄, 붉은 모래 갖가지 주술적 방법이 사용된다. 그래도 허사다. 화가 난 설공찬의 혼령이 더욱 설공침을 괴롭힐 뿐이다. 어느 날 공침의 몸에 들어간 설공찬이 친지들을 모아놓고 저승(작품에서는 단월국으로 그려지는 세계) 이야기를 들려준다. 핵심은 왕에게 충성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저승에 가 잘 살고, 반역을 일으킨 사람은 지옥에 가서 온갖 모진 형벌을 당한다는 이야기다. 콕 집어서 주전충 이야기가 나오는데 임금이라 해도 반정을 일으킨 죄로 지옥행이다. 그냥 그렇고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시대가 그러지 못했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이다. 반정으로 이익을 본 사람은 총 103명. 공신으로서의 이권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거기에 초를 뿌리고 재를 던지니 고울 수가 있으랴. 무엇보다 왕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한 사람은 왕도 당연히 지옥으로 간다니, 이건 내놓고 중종의 정통성을 부정한 격이다. 사형이 논의되고, 책이 불탄 것도 이해된다.     


 그의 패기 어린 행동에는 왕이 죽기 전까지는 그 직위는 하늘이 부여한 것이니 설령 부족함이 있다 해도 신하 된 도리로 폐위를 도모할 수 없고, 그 성정을 돌리어 좋은 군주가 되게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469년 초시, 복시, 중시에 모두 장원하여, 이석형과 더불어 조선 개국 이래 세 번 연속 장원한 주목받는 인재가 달고나 권력의 순탄한 길을 마다하며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 애썼다는 점은 흥미롭다. 즉 1478년 임사홍의 비리를 규탄하여 좌천되었고,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를 위해 간하다가, 성종의 노여움을 샀던 일, 중종반정 세력이 명망 있는 학자인 그를 영입하려고 하자 끝까지 거부하다 결국 측근들이 술을 이용해 그를 반정 세력으로 만들었지만, 권력을 잡은 박원종, 성희안을 필두로 한 핵심 반정 세력의 국정 농단이 계속되고 중종이 초반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개혁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여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다시 집권세력을 비판한 기개는 높이 살 만하다.      


 소설 말미에 왕이 염라대왕에게 부탁하는 내용이 나온다. 자신이 아끼는 신하 성희제가 저승에 가게 되었는데 잘 좀 봐달라고 했다. 염라대왕은 현세의 왕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오히려 발끈해서 성희제의 손을 삶아버리라고 지시한다. 이름을 보니 이건 대놓고 반정세력 성희안을 물 먹인 듯하다. 조선 시대 과거 급제자의 평균 연령대가 30대였음에도 채수는 20살에 생원시, 진사시 21살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사헌부 감찰에서 시작하여 홍문관 교리, 이조정랑, 성균관대사성, 호조참판 등을 지냈으니 총명하고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인생 자체가 순탄하지는 않았다. 삭탈관직과 유배, 곤장 100대... 굴곡이 많았다. 채수는 당시 정통 유학자와 달리 불교와 도교에 관심이 많았고 풍류를 좋아하고 기질지성이 한번 아니다 싶은 것은 참아내지 못하였다. 상황의 유불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거침없는 성격 탓에 사람들로부터 재주는 많지만 사람이 경박하고 행동이 거칠다는 평가가 항상 뒤따랐다. 그런 그의 기질 덕분에 설공찬전 같은 독특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고전소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품을 만들어낸 당시 사회문화적 맥락, 그리고 작가의 삶을 탐구해보면 텍스트가 고정된 의미를 넘어서 더욱 팽창하는 것이 느껴진다. 문학 저편의 사람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도 허박한 신체와 말에서 떨어지고 난 뒤 평생을 괴롭힌 지병, 만년의 중풍으로 골방을 벗어나지 못한 채 소설 쓰기를 통해 공도와 공론의 정치를 주창해간 조선의 천재 졸수재 조성기는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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